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박넝쿨 타령

김소월

박넝쿨이 에헤이요 벋을 적만 같아선
온세상을 얼사쿠나 다 뒤덮는 것 같더니
하드니만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야
草家집 三門을 못 덮었네, 에헤이요 못 덮었네.

복송아 꽃이 에헤이요 피일 적만 같아선
봄동산을 얼사쿠나 도맡아 놀 것 같더니
하드니만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야
나비 한 마리도 못 붙잡데, 에헤이요 못 붙잡데.

(3연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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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어디서든 마구 뻗어나가는 칡넝쿨을 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김소월의 ‘박넝쿨 타령’이다.

김소월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에게 작품이 애송되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김소월은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 ‘먼 후일’, ‘진달래꽃’,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부모’ 같은 시들은 널리 애송될 뿐만 아니라 노래로 만들어져 애창되기도 한다.

‘박넝쿨 타령’이란 시의 내용은 겉에 드러나 있는 의미 그대로다. 박넝쿨이 뻗을 적에는 그야말로 온 세상을 다 덮을 기세더니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 서리가 내려 오그라드니 초가집 지붕 하나 다 덮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사꽃도 마찬가지. 필 적엔 봄 동산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일 것 같았는데, 봄이 가고 나서 보니 나비 한 마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소월(본명 김정식)은 1902년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일명 남산동) 569번지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철도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는 등, 그의 생애는 가난과 사업 실패로 인한 불운과 불행으로 점철됐다.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절망과 비관 속에 살던 김소월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하고, 1926년 낙향해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해 운영하다가 실패, 1934년 12월 24일 시골 장터에서 구입한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

이러한 그의 불행했던 생애가 그의 ‘한(恨)’의 정서를 키웠을 것이며, 이제 막 뻗어 나가는 박넝쿨과 피어나는 복사꽃을 보고 이러한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박넝쿨 타령’은 그의 사후 1939년 ‘여성’ 42호에 발표됐다. 민요적 향토적 색채가 짙은 작품으로, 이 시 역시 그의 시 세계인 ‘한의 세계’에 정서적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를 일부러 다시 찾아 읽었을 때의 일은 또렷이 기억난다. 2000년대 초 나는 천안의 한 중학교 2학년 담임이었다. 우린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다. 불국사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나도 불국사 경내를 거닐 때였다. 앞마당 귀퉁이에 큰 고목이 있고, 칡넝쿨이 그걸 타고 올라갔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칡넝쿨 줄기가 진짜 내 팔뚝만했다. 뼈대만 남은 고목을 구렁이 같은 칡넝쿨이 굼실굼실 감고 올라갔는데, 고목 끝까지 올라간 칡넝쿨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자, 급기야 밑으로 내려오면서 제 줄기까지 얼기설기 감고 있었다.

나는 고목과 등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다 전율하고 말았다. 정말 가슴이 날카로운 칼에 베일 때처럼 서늘하고 섬뜩했다. 고목뿐 아니라 그것을 뒤덮은 칡넝쿨마저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학교 책상 유리판 밑에 놓아뒀다. 그러면서 인간이든 자연이든 욕망이 지나칠 때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대한 경계로 삼았다.

소월은 이제 막 땅맛을 알아 왕성하게 뻗어 나가는 앳된 박 넝쿨을 보고 인생의 비의(秘意)를 깨달았던 것 같다. 봄이 돼 초가삼간을 다 뒤덮을 것처럼 뻗어 나가던 박 넝쿨은 혈기왕성한 젊은 청춘이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거릴 것만 같은 호기로운 기세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을 돗자리 말듯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다닐 것만 같던 헌걸찬 청춘도 하룻밤 찬 서리에 오갈들어 말라버린 박 넝쿨과 같은 것을.

인간의 욕망은 수직상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욕망이 사회적으로 실현될 때엔 더욱 그러하다. 더 많은 부와 쾌락, 더 높은 명예와 권력에 대한 추구는 인간을 출구 없는 대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 인생을 탐욕으로 얼룩지게 만들며, 우리 사회가 경쟁 사회인 만큼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무한궤도를 질주하는 욕망이라는 기관차를 제어할 수 없을까? 욕망의 추구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 돼 버린 현실에서, 그리고 그 끝이 찬 서리에 죽음일 수밖에 없는 박넝쿨과 같다는 이치 앞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욕망을 다스릴 수 없을까?

인간이나 자연이나 욕망대로 하자면 못할 게 없다. 그러나 하룻밤 새 찬 서리에 시들어버린 박넝쿨처럼 또는 봄날의 복사꽃처럼,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의 일이다. 소월은 이러한 인생의 이치를 민요적이고 향토적인 이 시에 담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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