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따뜻함 있는 문화도시 대전을 꿈꾸며
친구들과 열정 하나로 덜컥 창업
민간공연장 ‘아트그라운드플래닌’
문화예술 창작·보급 위해 만들어
자생력 갖춘 지역축제 구현 목표
코로나19와 씨름하는 와중에도
문화예술 내일 위해 고군분투중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삶은 끝없는 기다림과 견디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2020년 오늘날 문화예술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문화예술이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언택트(Untact)’ 기지를 십분 발휘하며 험난한 감염병의 파고를 넘고 있는 국민 삶에 한 줄기 희망을 전하곤 있으나 감동은 결국 현장에 있는 법이다. 문화예술은 어느 곳이 됐든 사람을 만나고 상호 감정의 교감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진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코로나19의 비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젊음의 감각으로 새로운 문화를 쫓고 있는 이경수(39·사진) ㈜플래닌(Planin) 대표이사를 만났다.

이경수 ㈜플래닌(Planin) 대표이사

◆ 미약한 시작, 창대함을 꿈꾸며…

그에게 문화예술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8년 전 나름 문화예술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던 친구들과 청년문화기획사 플래닌의 문을 열 때 만해도 열정 하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예술은 오로지 취미였지 엄밀히 말하면 이곳 생태계의 섭리조차 쉽사리 고민해보지 않았던 이 대표였지만 돌이켜보면 뭣 모를 때 일단 저질러보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단다.

“사실 문화예술을 업(業)으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취미였죠. 그런데 만날 운명은 끝내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친구들도 퇴사를 하고 저도 다른 일이 필요해지면서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졌어요. 그 친구들과 이 분야에서 함께 해보기로 뜻을 모아 2012년 12월 덜컥 창업을 하고 말았죠. 창업이라는 거 그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과연 세상에 창업을 겨울에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루하루가 생존의 몸부림과 같았다고 했다. 창업은 했는데 벌어오는 수익은 없고 반대로 써야 할 곳은 계속 늘어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여기에다 문화예술이 본래 전공도 아닌 탓에 낯선 이의 행보에 사람들은 그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쉬 거두지 않았다. 창업 초창기부터 지금껏 이 대표가 문화예술의 흐름을 공부하고 더 깊이 있게 파고들고자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연유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그래도 이 분야 전문가들인데 제 전공이나 이력은 문화예술 하나로 이어진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학 석사학위를 따기도 했죠. 배움에 대한 갈증은 아직도 많습니다. 문화예술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현장의 흐름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죠.”

◆ 즐겁고 따뜻한 문화가 살아 있는 대전

그가 돌이켜보건대 우여곡절은 숱하게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역경들은 험난하다는 문화예술 현장에 플래닌의 뿌리를 튼튼히 했고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사람 나이로 쳐야 고작 8살에 불과하나 지역 청년단체들과는 협업을, 즐거운 대전·따뜻한 대전·문화가 있는 대전을 꿈꾸며 세상에 내놓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플래닌의 지향점은 퍽 성인 못지않다. 특히 플래닌이 펼치고 있는 여러 역점 사업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지역 문화예술 창작과 보급을 위해 공을 들여 만든 민간 공연장 ‘아트그라운드 플래닌’이다.

“한 3~4년간 청년예술가들을 케어하는 일을 해왔는데 정보격차가 너무 크다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정보가 돈이 되고, 네트워크가 되는 현실에서 청년예술가들은 그마저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죠. 이걸 조금이라도 해소해보자는 취지에서 민간 공연장을 열게 됐습니다. 올해 협력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7개 팀을 뽑아서 하반기에 기획공연을 하고 단독공연 기회도 줄 계획입니다.”

이 대표와 플래닌의 또 다른 목표 중 하나는 자생력을 갖춘 지역 축제를 구현하는 일이다. 지난 2016년 한여름 밤의 야시장을 모토로 처음 선보인 달밤소풍축제가 대표적이다. 공공기관 지원에 힘입어 치러지는 축제의 특성을 벗어나 우리 지역에서도 이제 외부 지원 없이 발전할 힘을 갖춘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그 핵심 관건은 축제 자생력(自生力) 확보에 있다.

“후원이든 판매 없이 살아남는 지역 축제가 없다는 것도 정보 격차에서 벌어지는 문제라고 봐요. 자생할 수 있고,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나름의 수익모델이 만들어진 축제가 있어야 코로나19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실험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두 달 동안 여름 야시장처럼 푸드트럭과 플리마켓, 공연, 포토존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달밤소풍축제에 거는 기대가 커요. 자체적인 축제로 첫발을 뗀 후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며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올해는 일단 일정이 보류된 상태에요. 코로나19로 걱정이 많지만 개최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어떻게든 돌파해봐야죠.”

◆ ‘코로나19’ 그리고 문화예술의 내일

코로나19로 대중음악, 클래식과 뮤지컬, 연극 등 문화예술계 전반이 끔찍한 상황에 직면했다.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는 무대가 모두 사라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화예술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예술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세계라는 확신에서다.

“코로나19로 가장 침체 된 분야 가운데 하나가 문화예술이 아닐까요?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지만 이젠 코로나19와 일상적으로 붙어서 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문화예술이 가진 힘을 국민과 공유하는 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공기관이 앞장서 이끌어갔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의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그가 입에 닳도록 말하는 문화예술의 자생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자생하지 못하는 문화예술은 공공의 지원에 의존할 테고, 그러다간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 분명해서다. 어쩌면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아 뛰어든 이들 중 남는 이보다 떠난 이가 더 많은 원인이 여기에 있진 않을까. 근고지영(根固枝榮). 자고로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고 번성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이 바닥에선 조금씩 모양 내고 성장하던 그룹도 공공지원을 받는 순간 망한다는 속설이 있어요. 사람들은 좋겠다 싶어 도전했는데 아닌 거 같으면 떠나버리기 일쑤죠. 문화예술이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해요. 지원과 정책 변화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고 후배에게 더 반듯한 내일을 물려주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작은 파이 놓고 싸울 게 아니라 그 파이를 우리가 키워보자는 거죠.”

삶의 무게가 더해지고 사는 게 고달플수록 갈구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 때 희망이라는 이름은 한 줄기 위안이 된다. 어쩌면 코로나19와 씨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처지가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희망은 땅위의 길과 같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듯 절실하게 갈구하면 희망의 싹은 트고야 만다. 옛 말에 ‘상전벽해(桑田碧海) 되어도 비켜설 곳이 있다’고 했다. 바꿔말하면 지금의 난관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얘기다. 현실이 고통스럽긴 하나 그가 위기의 오늘을 용감히 이겨내고 있는 까닭이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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