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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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박물관 제우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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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화 채화
헤라신전
펠리페이온
제우스 신전
제우스신전
제우스 신전 전경
아고라의 스토아 석주 기단석들
아고라
펠로폰소스반도

[금강일보] 오늘날 서양문명의 원류라고 하는 그리스는 오랫동안 도시국가로 살아오다가 BC 31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망하여 그 지배를 받다가 BC 132년 로마의 지배를, 그리고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1830년 독립될 때까지 2000년 이상 나라를 잃고 살아왔다. 이런 까닭에 창조민족이자 신화의 나라 그리스의 유물은 바티칸·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곳곳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고,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도시마다 전쟁터의 상흔처럼 남아 있는 대리석 기둥과 조각상의 파편들이 그리스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에서 아테네 이외에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제우스 신전과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픽이다. 올림피아는 본토에서 남서쪽 이오니아해 쪽으로 불거져 나온 펠로폰네소스(Peloponesos) 반도에 있는데, 이곳은 BC 2000년경부터 미케네·티린스·필로스 왕국을 중심으로 미케네문명을 꽃피웠던 땅이다. 펠로폰네소스란 탄탈로스의 아들이자 제우스의 손자인 ‘펠롭스(Pelops)가 태어난 섬’이라는 뜻이지만,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썼던 BC 8세기경까지도 펠로폰네소스란 지명은 아직 없었고 아르고스(Argos)라고 불렀다. 아르고스 반도의 피사(Pissa) 지방에서 최초로 올림피아 축제가 시작되었다. 피사는 BC 570년 이후 엘리스(Elis)와 스파르타(Sparta)의 영토가 되었다.

아테네에서 올림피아까지는 약 260㎞ 거리인데, 기차와 시외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고작 100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인 올림피아는 세계 각국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점, 기념품 가게, 숙박업 등이 주 수입원이다. 올림피아역에서 내린 뒤 알피오스강과 클라디오스강이 만나는 해발 123m의 크로노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매표소가 있다.

입장권(6€)을 사서 유적으로 들어서면, 올림피아 박물관, 유적 터, 그리고 유적지 초입 오른쪽에 있는 고대 올림픽 역사박물관까지 돌아볼 수 있다. 올림피아의 지형은 크로노스 구릉이 북쪽 경계선을 이루고, 3면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사다리꼴 모습인데, 아테네 등 다른 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아고라 광장을 비롯하여 스토아(Stoa), 그리고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헤라 신전, 펠롭스 신전 등이 있다. 가장 북쪽에는 축제 때마다 여러 도시국가에서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보물창고 11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아테네 창고 하나만 남았다. 동쪽에는 올림픽경기장, 서쪽에는 체육관·선수들의 숙박 시설, 레슬링, 권투 등 각종 격투기를 벌이는 팔레스트라(Palaestra) 등으로 나뉜다. 올림피아는 1989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민족에게 백두산처럼 그리스인의 정신적 고향인 올림포스산(2919m)은 그리스 제2의 도시인 북부 테살로니키에서 약 100㎞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올림포스가 신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 도시국가마다 제각기 신을 숭배하는 신전과 아고라가 있었다. 신전에서는 신에 대한 제사는 물론 체력을 겨루는 운동 경기, 음악, 시, 웅변대회 등 여러 행사를 즐기는 축제가 있었는데, 올림피아 축제를 비롯하여 델포이의 피티아 축제, 코린토스의 이스트미아 축제, 아르골리스의 네메아 축제 등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도시국가들은 축제를 통해서 결속력과 공통의식을 가졌으며, 축제 기간에는 전쟁도 멈추었다.

제우스 신전은 올림피아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서 너비 30.4m, 길이 73m의 면적에 전면에 6개, 측면에 3개씩 21.7m 높이의 도리아식 기둥을 세웠다. 피사 인들은 이곳에 크로노스와 헤라 신전을 지은 뒤 BC 11세기~BC 10세기경에 제우스 신전을 지었다고 하지만, 1829년 프랑스 고고학자 A. 블루에의 발굴 결과 제우스 신전은 BC 6세기경 건물로 알려졌다. 그 후 1875~1881년 독일 고고학자들이 제우스 신전 전체와 그 주변 발굴에 나선 데 이어 1936년에는 올림픽경기장 발굴을 시작하여 1961년 복원이 이루어졌다.

제우스 신전에는 BC 438년 아테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8년 여에 걸쳐 제작했다고 알려진 제우스상이 오른손에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왼손에는 황금으로 장식한 지팡이(王笏)를 쥐었으며,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제우스상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과 함께 페이디아스(Pheidias)의 2대 걸작이라고 하지만, 동로마가 비잔티움으로 뜯겨간 후 소실되었다. 그 복원도만 올림피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제우스 신전 옆의 헤라 신전은 제우스 신전을 따로 짓기 전까지 헤라와 제우스를 함께 모셨던 신전으로서 올림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제우스의 제단이 제우스 신전 정면이 아니라 헤라 신전과 사이에 있는 것도 나중에 제우스 신전을 짓고 공동제사를 올린 것임을 알게 한다. 헤라 신전 앞에서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때 흰 드레스를 입은 그리스 처녀들이 여사제들처럼 성화를 채화하는 행사장으로도 유명하다. 그 북서쪽에 우리네 홍살문처럼 우뚝 솟은 문루 필리프이온(Phillippeion)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버지 ‘필립 2세’가 BC 338년 키로네아 전투에서 테베와 아테네를 물리친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개선문이다.

그런데, 올림피아에서 벌인 축제 중 가장 유명한 올림픽은 BC 776년 제우스가 크로노스와 레슬링에서 승리한 뒤 승리를 자축하며 첫 경기를 벌인 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테베의 헤라클레스가 엘리스를 정복한 뒤 승리를 기념하여 대회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또 트로이 전쟁 때 가장 친한 친구 파트로클레스를 잃은 아킬레우스가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달리기 한 종목을 개최한 것이 올림픽의 시초라고도 한다.

초기에는 경기장과 성역이 분리되지 않아서 경주로의 한쪽이 제우스의 신전과 대제단 바로 정면에 있었으나, BC 724년 제14회부터 너비 32m, 길이 약 192m의 경기장 왕복 달리기로 바꿨다. 경기장은 한 번에 20명이 동시에 달릴 수 있었고, 코스 양쪽에는 출발점과 결승점을 표시하는 경계석을 박았다. BC 708년 제18회 때부터 레슬링과 5종 경기(Pentathlon: 멀리 뛰기, 창 던지기·단거리 경주·원반 던지기·레슬링) 등이 추가되어 경기는 13종목에 달했고, 축제 기간도 닷새로 늘어났다. 레슬링은 무기를 들지 않고 맨몸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경기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고, 그리스어로 '다섯을 의미하는 펜테(Pente)에서 따온 5종경기도 인기가 있었다. BC 668년에 추가된 권투도 처음에는 세스타스(cestus)라고 하는 부드러운 가죽장갑을 끼고 시합을 벌이다가 단단한 가죽에 금속 징을 박은 장갑을 끼었으며, 심지어 어느 한쪽이 기권하거나 죽을 때까지 휴식 시간도 없이 계속되었다. 쓰러진 선수를 가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BC 680년에는 전차 경주(Chariot Race)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상무 정신을 고취하는 올림픽은 그리스 시민만 참가할 수 있고, 우승자는 올리브로 만든 월계관뿐이었지만 출신 도시로부터 찬사와 함께 많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올림피아의 경기를 올림픽(Olympic)이라 하고, 4년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간격을 올림피아드(Olympiad)라고 했다. 4년을 한 단위로 하는 올림피아드는 그리스의 역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올림픽은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인의 단합을 강조하는 축제가 로마의 국교인 기독교에 반한다는 이유로 경기장을 파괴하여 1179년 동안 열렸던 올림픽은 393년 29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82년에 문을 연 올림피아 박물관에는 올림피아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하여 지역의 선사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는 올림피아 복원도가 있고, 각 전시실에는 헤라클레스와 크레타섬의 황소, 미케네 시대의 투구, 올림픽 우승자의 조각상들 등 올림피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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