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 동네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열심히 새로 들어온 신간도서를 배가하던 중에 ‘뭐지, 이 책은? 아동도서인데 잘못 배가되었나?’하면서 집어 들었던 책이 하나 있었다. 딱 아이들 동화책같이 생긴 책. ‘아동도서인데 잘못 배가된 거면 수정해야지’하고 생각하며 첫 장을 열어 내용을 살피다가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림책이다. 글자 수가 정말 얼마 안 된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글을 읽는 시간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다.

‘안녕. 정말 오랜만이야.’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흔히 듣는 평범한 인사말로 책은 시작된다. ‘문득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우리 동네는 그대로일까?’ 나비가 하늘을 날고 있고 자전거를 탄 집배원 아저씨가 열심히 가고 있는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 동네. 높은 고층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에게도 우리 동네는 있겠지? 나의 우리 동네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서너 살의 기억 속 우리 동네부터 어제 일같이 선명한 초등학교의 우리 동네까지 다양하지만 비슷한 점은 생각할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내 서너 살의 기억에 우리 동네는 전라남도 여수의 언덕배기 높은 곳의 초록 대문 집. 마당 한가운데 수돗가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넓은 이파리의 무화과나무는 한여름에 그늘을 드리웠고 무화과 꽃이 피면 온 집이 향기가 가득했었다. 언제 저게 익을까 손꼽아 기다리다가 엄마가 따서 쪼개 주시는 무화과 한입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

내 초등학교의 우리 동네는 충남 공주 탄천면의 냇가 동네 떡 방앗간 집. 동네에 몇 개 없는 단감을 서리하다가 걸려서 나무에서 뛰어내려 도망갔었다. 무서워 도망가느라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발목을 접질려 퉁퉁 붓는 바람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비가 오고 나면 물이 불어난 냇가에서 멱을 감고 고기를 잡던 정말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 이제 그 마을은 없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있다. 지금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기억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잊고 산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우리 동네가 아직도 있고 무엇인가 추억의 한 자락을 풀어 놓으면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은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보는 시간은 짧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정말 길다.

아무런 내용은 없어도 책을 본 순간부터 마지막 한 장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곱씹게 한다. 누구나 읽고 나면 ‘그때 우리 동네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여러분의 버킷리스트에 이 책을 권해 본다. 정성택(충남태안교육지원청태안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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