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한밭대 인문교양학부 조교수
(英)옥스퍼드대 OIPA 겸임연구원

[금강일보] 한밭대학교는 매 학기 세계시민(global citizen)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한 분반당 40명 정원으로 총 여섯 분반이 개설되니 대략 240명의 학생들이 15주 동안 세계시민에 대해 학습하는 셈이다. 그런데 세계시민 교육은 우리뿐만 아니라 UN 산하 여러 국제기구와 선진국에서도 시행해 왔다. 그러면 세계시민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의 주역이 될 때쯤에는 세계시민이 보편화되어 인류가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권(citizenship)과 세계시민 개념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시민권은 일종의 배타적 권리이다. 즉, 특정 조건을 갖춘 이들은 권리를 누리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권리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제도이다. 시민권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한 영국의 사회학자 토마스 마셜(T.H. Marshall)에 따르면 인류는 18세기 공민권, 19세기 정치권, 20세기 복지권으로 시민권을 발전시켜 왔다. 시민권 발달 역사는 우리 사회의 포용(inclusion)과 배제(exclusion) 간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세계시민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모두 세계시민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네스코(UNESCO)의 시각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시민을 광의의 지역사회와 공통의 휴머니즘에 대한 소속감을 갖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광의의 지역사회란 지구촌을 말하며 공통의 휴머니즘이란 인류 모두가 인정하고 지켜내야 할 가치를 의미한다.

이제 추상적 개념을 넘어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시민권의 배타성 작동 메커니즘은 여전히 공고하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후 형성된 국가 체제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자국 중심 사고로 국가 간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 5월 미국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같은 인종차별 문제, 강제성이 부과되어야만 개선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여성 할당 정책 시행과 같은 젠더 불평등 문제 등 일상생활 차원에서도 배제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인류가 공통의 가치 수호를 중심으로 잘 단결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을 둘러싼 국가의 위선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1948년 UN의 세계인권선언 발표 후 각국이 추구해야 할 보편 가치로 인권 수호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국가는 없지만, 인권의 가치가 국가 이익과 충돌할 경우 국가는 결코 인권 수호를 선택하지 않는다. 마이클 하스(Michael Haas)의 주장처럼 심지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 UN 안보리 승인 없이도 전쟁을 개시해 왔다. 따라서 인류 공통의 가치 수호를 통해 세계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아직 데이비드 포사이드(David Forsythe)의 ‘현실 세계 속 자유주의 정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주로 세계시민의 길을 향한 부정적인 사례를 들었다고 하여 내가 세계시민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희망적인 사례도 많이 있다. 최근 대표 사례로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세계백신연합(The Vaccine Alliance, Gavi)의 활동을 꼽을 수 있다.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코로나19를 인류가 함께 이겨내야 할 팬데믹이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사전 계약을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대국들의 이기적 행동으로 인류 공통 가치로서 백신 접종의 형평성이 짓밟히자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며 모든 이들에게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백신연합의 활동은 세계시민의 길로 가는 희망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인류가 세계시민 비전을 실천하여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를 위해 교육 기관의 세계시민 교육은 이론 교육을 넘어 서로를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포용할 수 있는 세계시민 감수성 함양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세계시민 감수성 함양 관련 정책 시행으로 교육 기관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며 시민사회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적극적 실천이 없으면 세계시민을 향한 노력은 결국 수사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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