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은 노자의 도덕경 4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성인(聖人)은 항상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마음, 즉 상심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상심은 고정된 마음, 즉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아집이다. 자신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면 오로지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으로 가득차고 말 것이다. 성인은 리더이다. 리더가 아집과 고집스러운 마음을 가지면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를 개인적으로 참석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고 말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8월 7일에 15일에 서울가는 무궁화열차 표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우려 속에서도 지난달 말부터 교회 등의 소모임 금지를 해제하고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코로나 위기를 완화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8월 10일 무렵부터 수도권 중심으로 확진자가 두 배씩 폭증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고민을 했다. 이렇게 다시 확진자가 많아진다면 나같이 칠십이 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쉽지만 8월 11일날 예약했던 표를 취소했다.

그런데 15일 광화문집회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뉴스나 동영상채널을 통해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합 명수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운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코로나 방역을 경시하는 말과 태도는 많은 청중앞에서 해서는 안될 모습이고 마땅히 지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이다.

대통령은 “방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에게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국가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이다. 그리고 그 많은 대중이 모여서 행하는 많은 요구들에 대해서도 지도자의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백성들이 이유 없이 모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더운 여름 낮에 자발적으로 모여서 의견을 제시할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리더는 귀담아 들어야 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유연한 대처를 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 마치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모른 척한다고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권력주위에 있는 충견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까지 했다.

전 법무부장관의 임명에서부터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얼마나 정직하지 않고 부도덕한지를 백성들은 알고 있다. 지금 코로나 시작이 왜 이렇게 크게 번창했는지에 대해서 처음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을 금지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백성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정책을 입안해도 실패하고 있음을, 서울시장 죽음에 침묵하는 이유를, 6·25 전쟁의 영웅의 서거에 침묵하는 이유를 백성들은 또한 알고 있다. 백성들이 침묵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알면서도 스스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다릴 뿐이다. 그것이 사회 변화에 대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불행한 시대를 지낼 수밖에 없다.

리더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 백성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깊이 사유해야 한다. 즉 상심(常心)을 버리고 애민(愛民)의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쳐다보면 비로소 본질이 보인다. 우리는 리더가 백성을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의 마음으로 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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