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교육연구소장

옛날에 시집간 지 얼마 안 되는 새 색시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 그만 밥을 태우고 말았다. 새 색시는 어찌 할 줄을 모르다가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내의 울음소리에 부엌으로 달려온 남편은 “내 탓이오,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물이 부족하여 밥이 탄 것이오.” 남편의 위로 말에 아내는 감격하여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내가 늙어서 힘이 약해 장작을 잘게 패지 못한 탓이라고 며느리를 위로했다. 이 때 안방에서 시어머니가 나와 “아니다. 내가 밥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해서 불 끄는 것을 알려 주지 못한 탓이구나.” 하고 며느리를 위로해 주었다.

상대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이 가족 이야기는 한편의 감동드라마다. 이야기속의 이 가족처럼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내 탓이오’ 풍토라면 얼마나 살 맛 나는 우리 사회, 얼마나 신뢰 받는 우리 정치가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는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을 상대에게 돌리는 ‘네 탓이오’가 아니라 ‘내 탓이오’라는 덕목을 지녔을 때만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옛 고전에서 ‘내 탓이오’ 의 가르침을 찾아보기로 한다.

▲ 잘해보려고 했는데 결과가 나쁘다면?

맹자가 말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친하게 했는데도 친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仁)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성찰해 보고, 남을 다스려도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혜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성찰해 보고, 남에게 예의를 갖춰 대했는데도 상대방이 예로써 화답해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공경심이 부족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잘 해보려고 했지만 그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면 자신을 냉철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자신을 성찰하여 자신을 올바르게 세우면 천하의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돌아 올 것이다.

만약 천하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직 자신이 바로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맹자 이루상편) 공자께서는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하였다. 천주교 기도문에도 ‘제 탓이오. 제 탓입니다. 저의 탓입니다.’ 하며 신도들에게 항상 자신의 성찰을 주문(注文)하고 있다.

▲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맹자는 ‘행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 찾아라.(行有不得反求諸己)' 하였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가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네 탓이오’가 아니라 ‘내 탓이오’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하나,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된다.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로 인해 잘못된 점을 찾아 고치게 되니 결국은 자기 발전의 이득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남 탓으로 돌리면 자신의 잘못을 찾지 못하게 되어 더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면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갖게 된다. 차라리 내 탓으로 하면

원망의 마음이 없으니 마음은 평안할 것이다.

셋,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상대에 대한 배려, 너그러움, 겸손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 남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윗사람으로서는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얻게 된다. 이처럼 ‘내 탓이오’는 얼핏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기 자신과 대인관계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지혜의 전략인 것이다.

▲ 그렇다. 역대 지도자마다 그 잘못됨을 전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고, 역대 정부마다 그 잘못됨을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우리의 정치사는 그 잘못됨을 전 정권의 탓으로 돌리는 이러한 대물림이 계속되는 한 어찌 이 나라의 발전을 바랄 수 있겠는가? 도산 선생께서 내려다보시며 일갈하신다.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내가 죽일 놈이라고는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인문학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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