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시인·한남대 교수)

폭우가 핥고 간 뒤 맑아진 강이
내 얼굴을 씻는다.
세수 후 문득 안개가 걷히고
채소밭과 건너편 사람들의 동네가 빛나며 나타난다.
무같이 속 피어난 돌들이
물속에서 돌아누우며,
무가 푸른 잎과 누런 흙 속에 흰 살을 숨기듯이
내게 얼굴을 내민다.
평창과 단양을 지나와
폭우와 번개의 길을 굴러온
돌들의 깊은 상처가
이제 겨우 내게 이르러 아물며 무늬진다.
 

 

김완하(시인·한남대 교수)

금강은 섬진강의 안부가 궁금해 그리로 달려가 본다. 지난 홍수와 장마에 범람해 화계장터가 다 잠겼다고 했다. 그 옆의 낙동강으로도 뻗어가 본다. 그리고 물길 돌려 충주 남한강의 목계로도 올라가본다.

이제 지난 폭우와 장마의 흔적 거의 잦아들고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으로 강을 지키고 있다. 흙탕물과 산사태 폭우로 요동치던 계곡도 사라졌다. 이렇듯 여름 한철의 폭우가 핥고 가서야 강은 맑아진다고. 그게 우리의 인생살이라고. 가파른 물길 부대끼며 굴러야 돌은 둥글어지는 법이라고 상처 속에서 배운다.

지루한 장마를 지나며 강은 더 깊어지는 법이거늘. 계곡으로 푸른 빛 더하고 깊이 파인 웅덩이에 물소리 몰려 우렁차다. 폭우와 번개의 길을 구르며 바위는 더 깊은 상처를 껴안는 법. 그 곁에서 물은 한없이 맑아지는 것이다. 가을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모든 강물에 잠긴 돌들의 상처가 푸르게 빛나기 때문. 그것은 강물에 무수히 누워있는 돌들의 이마에 박힌 구름의 눈동자. 우리가 그것을 보고도 가슴 열고 보듬어 안지 않는다면, 평창과 단양을 쉬지 않고 무수히 강물이 흘러왔다 한들 그 무슨 소용 있으랴.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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