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너무나 유명한 말이다. 강변의 모래는 여러 가지로 유용하지만 몇 개의 모래알은 그저 귀찮은 존재이다. 장미, 백합은 낱개 한 송이도 아름답지만 안개꽃은 여러 개가 함께 있어야 볼 만하다. 이처럼 뭉쳐 있어야 볼 만한 것들이 있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숭례문이나 경복궁은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되지만 거기에 쓰였다 널브러진 낱개 벽돌과 와편은 다르다. 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다. 옛 문화유산에 쓰인 벽돌과 와편들은 전시공간 한켠에 모아두면 볼거리 차원서 가치를 더한다. 길가에 흩어진 깨진 기와는 건축폐기물처럼 보이지만 박물관 진열대에 오른 깨진 기와는 문화유산 차원에서 대접이 달라진다.

중국 서안에 비림(碑林)박물관이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데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송나라 때부터 약 900년 동안 세워진 비석 1000여 개를 모아놓았다. 논어, 맹자 등 유교경전을 새긴 비석도, 서민 교화용 석대효경도, 멋진 글과 그림을 조각한 예술작품도 있다. 중국 최고의 서법가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조맹부 등의 작품도 있다. 중국 최초의 기독교 흔적 ‘대진경교중국유행비’도 있다. 모두가 국보급 문화재들이다. 대형 국보급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보니 일반 비석들은 하찮게 느껴질 정도다. 규모가 작더라도 모두가 소중한 보물들이고 뛰어난 역사성을 지닌 작품들이지만 각 지역에 낱개로 흩어져 있었다면 이런 대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이라도 특별한 역사성과 작품성이 없고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면 온전한 보존도 힘들뿐더러 관심의 언저리 밖에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뜻을 갖고 한 데 모아 둔다면 최소한의 관심은 받을 수 있다. 방치, 혹은 훼손될 수 있는 소소한 문화유산을 한 데 모아놓아 전시하는 박물관의 존재 이유다.

효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수 천 년을 내려오며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특별히 효자, 효부, 열녀를 기리며 세운 정려는 전국 각지에 남았다. 처음에는 주변의 귀감이자 자랑이라며 동네 한복판에 세웠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과 함께 세워진 동네 중심의 정려는 마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모이는 장소였다. 동네 사람들의 정신적 중심에 정려가 있었고, 그들이 모여 휴식하는 공간에 느티나무가 있었다. 대개 두 개는 함께 존재했고, 이곳에서 소통하며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여유를 누렸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 속 새로운 길들이 생기면서 동네의 중심이 바뀌었다. 대로변이 중심이 되면서 정려가 있던 곳은 변두리가 됐다. 변두리로 밀려난 효열 정려는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정려만 멀어진 게 아니라 효에 대한 마음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관리 보존되고 있는 일부 정려가 신기할 정도다. 이렇듯 대부분의 정려는 비지정문화재로 동네 한구석 아니면 산속 한 모퉁이에 방치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국가에서 정려를 명하고 세운 정려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규모라도 크다면 속 내용을 알든 모르든 문화재적 가치라도 있어 보일 텐데 한 칸 남짓한 정려는 별채 외양간만도 못한 게 대부분이다. 온갖 잡풀로 우거져 접근조차 어려운 곳도 상당수 있다. 정려가 있는 동네에 수 십 년을 살면서도 정려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면 뭔가 새로운 결단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국효문화진흥원, 뿌리공원, 족보박물관 등 한국효문화의 핵심 기관과 시설을 갖춘 대전의 결단이다. 전국에 흩어져 방치 훼손된 정려들을 한데 모아 효테마공원을 조성하면 어떨까. 또 하나의 세계최초, 세계유일의 정려공원, 효림(孝林)박물관이다. 성씨 조형물이 있는 뿌리공원 한 자락에 효열정려만을 모아 전시한다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전국 각지에서 홀대받던 정려를 모아두면 효문화로 특화된 대전의 이미지는 다시한번 높아지리라. 정려가 있고 효를 소중히 여기는 가문에서는 자발적 참여도 가능하리라. 정려공원, 효림박물관 당대 가치의 보존 차원에서 의미 있는 볼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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