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하루 10여 통의 휴대폰 안전 안내문자가 울린다. 평소에는 홍수나 폭설, 미세먼지와 같은 주의보였다면 올해는 코로나19와 관련된 문자가 대부분이다. 특정 지역을 방문한 이들의 자발적 검사를 촉구하거나 지역의 감염정보를 제공한다. 사회 안전을 위해 개인의 안전을 독려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덕분에 주변상황을 파악하고 할 일을 점검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안내문자 알람이 짜증스럽게 들린다. 반복되는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신념이 공동체 안전을 위협하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사랑제일교회와 광복절집회가 남긴 결과는 고스란히 모두의 상처가 돼 치유되기 어려운 분노와 혐오를 남겨 줬다. 분열과 갈등은 일상이 됐고 상식과 보편은 실종됐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의 50% 이상이 교회발(發) 집단 감염이고 보면 같은 종교인들에게 신앙적 회의와 수치심,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줬다. 방역수칙을 무시하고 검진을 거부하며 거짓말과 핑계로 일관하는 모습은 신앙의 천박성과 무신성(無神性)을 방증한다. 그 모습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습이 개신교 일각의 현실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들의 주장과 막말, 그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개신교의 토양위에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편향된 정치적 선택을 종교적 신념으로 환치하고 사회의 골칫거리가 돼버린 이들의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종교는 개인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대를 진단하고 사회 윤리를 제시하며,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 아울러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함으로써 성찰에 이르게 하고 개인의 탐욕과 이기심을 경고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종교적 교훈은 세속사회가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 희생, 자비, 용서, 양보, 겸손과 같은 덕목들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동의하기만 실천하기 어려운 종교적 목표와 이상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덕목들은 본질적으로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방향과 목표가 된다.

실제로 종교는 우리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철학과 사상, 문화의 토대가 됐고 보편적 가치를 제공했으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도록 독려했다. 알지 못한 가운데 형성된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 형성은 일정부분 종교의 영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종교권력은 매우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를 종교적 신념으로 둔갑시키거나 종교적 권위로 대중을 선동하기도 한다. 편향되고 부정한 행위임에도 종교적 명분과 이론으로 합리화시키기 용이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나 십자군 전쟁, 흑인노예제도 같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역사 속 불행한 사건은 대부분 종교권력의 가면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 정치권력은 종교권력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체제를 안정시키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종교권력 역시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교세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유난히 대형교회가 많은 한국교회 역시 이 같은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해방 이후 친미와 반공을 기치로 성장세를 구가한 한국교회는 근현대사 조국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했다. 그러나 민주화이후 이념논쟁이 무의미해진 사회 환경은 점차 개신교의 침체를 가져왔고 그런 위기의식 가운데 파행적으로 탄생한 것이 전광훈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왜곡된 종교의 생명력은 지속할 수 없다.

공통적으로 모든 종교는 자기를 부정하고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타자를 향한 환대와 배려가 없는 종교, 종교적 신념을 명분으로 공동체를 위협하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라 할 수 없다. 비본래적인 것이 본래적인 것을 몰아내고 진리인양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런 위험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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