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좇아 문 연 작업실…대전의 멋과 추억을 알리다
7년 직장생활 접고 1인 회사 창립
개인작업실 열고 사람들과 소통
지역 문화·역사 콘텐츠로 제작
브랜드 디자인·굿즈로 대전 홍보
내가 디자인한 동화책 발간 목표

박다정 다정한작업실 대표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 ‘디자인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슬로건이 퍽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미(美)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안목이 어느 정도는 일정 수준에 올라 있다는 얘기이긴 하나 문제는 그 핵심인 디자인 실력을 높인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이 분야에서 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디자인이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일 게다. 젊은 스물의 아쉬움을 지나 안정적인 마흔의 설렘을 향해 달리고 있는 박다정(30·사진) 다정한작업실 대표를 만났다.

◆ 잔뼈 굵은 회사원 CEO 되기까지…
대전 동구 대동은 지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명소다. 그 길 따라 골목을 걸어 들어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공간 하나가 눈에 띈다. 이름하여 ‘다정한작업실’이 그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표 스스로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창작의 세계이자 사람의 정이 은은하게 살아 숨 쉬는 둘도 없는 안식처다.

“5개월 전 이 자리로 이사를 했어요. 다정한작업실에선 브랜드 디자인, 편집·패키지 디자인부터 일러스트레이션, 굿즈 제작, 디자인 강의 등 나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죠. 개인 작업실이기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1인 회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이제 막 창업 새내기 딱지를 뗀 1년 차 CEO다. 창업에서라면 입지전적인 누군가에 비해선 아직 어디에 명함 내놓기도 민망한 박 대표지만 한 때 밖에선 나름 잔뼈 굵은 회사원이었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십분 이해가 될 것만 같은 옛 사연의 무엇이 그를 창업의 길로 인도했을까.

“7년 동안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했었어요. 공기업에 있어보기도 하고 전공을 살린답시고 디자인 회사에는 제법 오래 다녔죠. 그런데 막상 이 일을 해보고 저 일을 해봐도 오래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공 따라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내가 자신 있는 일보다는 이를 제약하는 부수적인 일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덜컥 ‘지금 창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바로 일을 저질렀죠.”

초·중·고교 학창 시절부터 오늘을 점찍어 둔 듯 박 대표의 학교생활기록부 장래희망 칸에는 늘상 화가, 만화가, 디자이너가 자리했다. 창업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시작됐으나 그의 꿈은 이미 오래 전 잠재해 있었던 셈이다. 창업 1년, 그도 뭐라 확언하기 어렵지만 청년 창업가의 패기있는 도전은 아직까지는 다행히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저 같은 경우 창업을 위해 엄청난 자본금을 투자한 것은 아닙니다. 디자인 작업이라는 게 컴퓨터와 그림을 그릴 도구만 있으면 충분하니까요. 일단 저질러 놓고 구멍을 메꿔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돼요. 운이 좋게도 창업한 후 계속해서 꾸준하게 일이 들어온 덕분에 1년을 잘 버텼습니다.”

◆ “잘 키워 준 대전에 보답해야 할 때”
박 대표의 전문분야는 시각적 사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일의 성패가 갈리는 시각디자인이다. 사실 요즘같이 디자인과 시각적 중요성이 강조되는 때가 있었나 할 정도인 점을 놓고 보면 그가 시기만큼은 참 잘 타고났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보통 인쇄물이나 웹상에서 정보로 읽혀지거나 보여지는 것들이 시각디자인입니다. 저는 주로 공공기관에서 의뢰받은 일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브랜드 제작에 몰두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은 걸 기획 해주는 거죠. 전문직 종사자인 겁니다.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뭔가를 주제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걸 보면 그 과정을 거치면서 겪은 힘든 기억들이 싹 녹아 사라집니다. 오래 기억될 기록을 내 손으로 완성했다는 뿌듯함도 함께요.”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특기를 발휘해서 삶의 터전인 지역에 돌려주는 일을 목하고심 중이다. 썩 달갑지 않지만 젊은층 다수의 인식에 뿌리 깊게 박힌 ‘노잼도시 대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내는 것이 목표다. 대전토박이 박 대표는 이것만큼은 수익 창출이 아닌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풀어나가겠다는 단단한 각오와 의지로 중무장했다.

“뭇 사람들이 대전에 대해 재미없는 도시라는 낙인을 찍는 게 제겐 늘 안타까운 부분이었어요. 그동안 화려하진 않지만 전공을 살려서 지역을 대표할 기념품이나 굿즈를 제작해 주변 청년 작가들과 팔기도 하고 홍보도 한 건 그런 인식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죠. 아직 공개하긴 그렇지만 앞으로는 다정한작업실이 있는 대동과 연관 지을만한 콘텐츠를 구상해보려고 합니다. 굳이 수익에 얽매이기보단 시민이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갖고 해나가야죠.”

◆ 청춘과 인생의 길 위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8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참 많이도 변했다. 적응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면 될 줄 알았지만 이번 시련은 견디기 힘들만큼 혹독하다. 감염병의 공포는 매섭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험난한 시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코로나19로 타격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정말 올 3~4월 이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도 마을 동료 분들이나 부모님, 지인들이 지지해주고 있는 덕분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이 직종이 그래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게 적은 것은 아니라서 당장 폐업을 고민하기보다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여지는 것도 사람 각자의 평가는 다르다. 어느 누구에겐 큰 가치가 있는 결과물도 다른 이에겐 퍽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가 몸담고 있는 현장이 창작을 향한 치열한 고민 없인 생존할 수 없는 풍토임을 방증한다. 박 대표가 자신만의 확실한 영역을 구축하고자 발버둥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정한작업실에서 청춘을,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그는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 장기적으로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이 쪽에서는 여기가 제일 잘해. 얘한테 문의해봐’라는 얘기를 들을 때까지 뛰고 또 뛰어야죠. 일러스트레이션 실력을 더 키워서 나중에 지역 아카이빙도 하고 특히 지역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자료로 남겨볼 계획입니다. 틈나는대로 이것저것 마을 지도나 아이콘, 이미지화 시킬 수 있는 소재를 찾아보고 있어요. 훗날 이런 경험들을 살려 동화를 써서 책으로 펴내는 게 목표인데 얼마 전 마을 작가들과 스터디까지 만들었으니 다시 팔 걷어붙여야죠.”

30대는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다. 무모하고 용감했던 20대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못했지만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철이 덜 든 나이가 30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30대는 가장 치열하고 빛나는 시기다. 무엇 하나 쉽게 얻어지는 건 없지만 인생의 우선순위가 조금씩 분명해지는 때가 바로 서른이다. 그는 지금, 어릴 적 꿈꿨던 어른과 닮아가고 있다. 조금 외롭지만 박 대표는 그렇게 단단해지고 있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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