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어느덧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의 중순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을이 정녕 가을 같지가 않다. 지난 여름이 가져다준 트라우마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벌써 여러 해째 계속되는 기상 이변으로 인한 징후를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역대 최대로 긴 장마와 계속된 태풍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짜증스러울 만큼 지루한 여름, 아니 최악의 여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몸살을 앓고 있는 기분이다. 예전 이맘때쯤 우리에게 다가서던 상큼하고 청명한 가을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곡이 무르익는 초가을, 수확을 기대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때인데도 그저 우울하기만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이 크게 올 거라는 기상학자들의 예견이나 언론 매체들의 보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였다. 그 정보들이 걱정을 넘어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공장 굴뚝, 자동차 매연, 또 갖가지 오염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분출되고, 온실가스가 대기를 점점 더 점유하는 중이라는 것을 이젠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하면 기후 난민 수억 명이 발생한다고 한다. 지구 어느 곳에선 심한 물 부족으로, 또 다른 어느 곳에서는 홍수와 태풍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미 그런 조짐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의 동네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입으로만 걱정을 하지, 실제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이들이 많다. 그 재난을 피부로 느끼고 현실로 인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증거가 바로 인간들의 지속적인 환경오염과 지구 파괴로 인한 자연 훼손, 화석연료의 남용과 황사 현상이다. 공기는 점점 오염되고, 거리에 나가면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기상청은 올해 한반도의 긴 장마와 태풍의 주요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들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414ppm이나 된다고 한다. 또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지표면이 점점 물에 잠기는 중이란다. 그런 상황에 시베리아 쪽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데, 남태평양 쪽에서는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된다. 그로 인해 바람이 북쪽으로 이동해온다. 이 과정에서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고, 다시 고기압과 충돌하면서 긴 장마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한 본질적 원인을 간과한 채 태풍, 폭우, 산사태, 해일 등 각종 재난에 따른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보다는 기상 이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해 재난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UN(국제연합)은 1972년 6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자’며 세계 환경의 날을 제정했다. 또 2015년 190여 개 국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온실가스를 통제하지 않으면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기후변화협약을 맺었다. 지구 온도가 0.85도 상승한 가운데, 이 협약은 2100년까지 1.15도 이상 더 오르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UN 산하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6도 추가 상승하면 생물의 18%가 멸종 위기에 놓이고, 2.2도 상승하면 24%, 2.9도 높아지면 35%의 생물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제안해 UN에서 채택한 ‘푸른 하늘의 날’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인이 함께 대기오염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기념일로, 이런 일련의 노력에는 결국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며 살다가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선 선언적 행위만으론 부족하다.

유년 시절 필자는 가을을 맞으면 제일 먼저 하늘을 바라봤다. 맑고 청정한 하늘, 밤이 되면 그 하늘에서 수천·수만 개의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지금보다 생활 형편은 많이 어려웠지만 깨끗한 환경,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수확의 기쁨을 기대하며 마음은 풍요로웠다. 그때가 문득 그립다.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다. 잘 지키며 유용하게 쓰다가 후손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올 가을은 대기오염 없이 맑고 높푸른 하늘이 유지되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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