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익 전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금강일보] 중국 춘추시대의 제환공(齊桓公)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늘 곁에 놓아뒀던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린 ‘계영배(戒盈杯)’. 공자(孔子)가 제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잔에 구멍이 뚫려 있음에도 술이 새지 않다가 어느 정도 이상 채우면 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謙讓)하며, 용맹을 떨치고도 겸손(謙遜)하며, 부유하면서도 검약(儉約)함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林?沃, 1779~1855)에 관한 일화도 전해지는데,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했다고 한다.

필자가 계영배 이야기를 국회의원과 관련지어 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민생 법안과 코로나19 관련 법안 등을 처리함에 있어 오직 국민과 국익 그리고 민생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올 초 발생한 코로나19는 국가적 비상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고, 최근 연이은 태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과 멈춰선 경제에 생계조차 막막한 서민들을 위한 관련 법안은 여야가 협치를 통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신속히 처리해야 할 민생 법안들은 계영배에 부어도 넘쳐나지 않을 것이다.

21대 정기국회 첫날부터 100일 동안 국민들의 지쳐 있는 삶의 소리를 경청하고, 그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시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는 의원들이 되기를 바란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20년 9월 재정 동향’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재정 적자의 폭이 매우 크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살펴보면 헌법상 채무제동장치를 마련한 스위스는 신규 채무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0.35% 이내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 555조 8000억 원 규모로 올해 본예산보다 8.5% 늘었는데, 적자국채 발행으로 메우다보니 내년 국가 채무 비율이 GDP 대비 46.7%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준칙을 이달 안에 만들겠다고 하지만 성장률이 급락하는 요즘처럼 확장재정을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유로존 평균인 84.1%에 비하면 많이 낮지만, 재정준칙을 만들 때 확실한 제동기능을 담아 채무제동장치에 확실한 실효성이 있도록 하기를 바란다.

국회에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채무제동장치를 마련한다면 선심성 정책에 대한 심의를 철저히 함으로써 표를 의식한 재정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계영배를 항상 옆에 두고 자신의 과욕을 경계해 후대에 엄청난 빚더미를 떠넘기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스위스에서는 지난 2016년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자는 법안과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를 두 차례 진행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특히 스위스 국민의 76.7%가 기본소득에 반대했다. 이러한 것은 재정 포퓰리즘에 거부감을 갖는 스위스 국민들의 여론이기도 하다.

코로나19와 극심한 자연재난으로 인해 우리 앞에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이러한 새로운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국민의 등불이 돼야 한다. 집행기관인 행정부가 적시에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다가오는 비대면 사회에서 민과 관이 대화와 소통으로 협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21대 첫 정기국회는 몹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만 국회의원들에게 계영배를 한 점씩 선물해 겸양·겸손·검약함을 지키도록 권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고 성공적인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남을 위한 배려가 꼭 필요한 시기에 국민 모두가 안녕할 수 있도록 국회가 앞장서 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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