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피살사건 재조명, 당시 박정희, 정일권, 이후락, 김형욱과 스캔들

 정인숙이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정인숙 피살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의 강변3로에 멈춰 서 있는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권총에 넓적다리를 관통당해 신음하고 있는 한 사내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진 한 젊은 여인이 발견됐다. 부상당한 사내는 정종욱(당시 34세), 숨진 여인은 정인숙(당시 25세)으로 두 사람은 남매 관계로 밝혀졌다.

당시 26세였던 정인숙에게는 3살 된 아들이 1명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소지품에서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 26장이 포함된 33장의 명함이 쏟아져 나왔는데, 명단에는 박정희, 정일권, 이후락, 김형욱 등 대다수 5.16 주체세력들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낳았다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됐다. 언론은 정인숙에게 숨겨진 아들(정일성, 정성일, 또는 박승일(68년 3월생))이 하나 있고, 그 아들은 당시 청와대 고위층의 자녀라는 소문과 정인숙이 당시 정관계 고위층 전용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요정 '선운각'을 드나들었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 정종욱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권부의 압력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고 하며 사건의 진상은 현재까지도 밝혀진 것이 없다. 정인숙 살해 사건은 넷째 오빠인 정종욱의 범행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의혹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성급히 종결지으려는 수사 태도도 의심을 샀고 정종욱이 사용했다는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는 오직 정종욱의 자백뿐이라는 점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사건은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은 1985년 도피했다가 1991년 전 국무총리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돌연 소를 취하한 후 미국으로 떠나 피살 사건의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편 정인숙은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이다. 제3공화국 당시 화제 인물로, 서울 시내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접대부였다. 국무총리 정일권의 내연녀로 정인숙 살해 사건의 피해자였다.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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