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공연장 문 닫힌 지 오래지만
아르바이트 병행하며 연극 활동 분주
‘자화상’ 그리는 연극…“불안감 떨쳐야”

[금강일보 강정의 기자] 전 세계를 짓누르는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장의 문이 굳게 닫힌 지도 오래다. 감염 확산에 따라 언택트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는 데 더해 감염을 막기 위한 정부의 집합금지 제한 조치에 따라 전국 곳곳의 공연장 무대와 객석엔 먼지만 잔뜩 쌓이고 있는 거다. 엄태훈(31) 청년극단 아라리 대표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느덧 극단을 차린 지 3년차에 접어든 그에게 코로나19는 일생일대의 최대 고비로 여겨질만큼 그 여파가 만만찮다. 계획됐던 모든 연극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는 걸 지켜봐야만 그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낄 정도다. 그렇지만 뒤돌아가는 법은 없다. 수익을 바라고 뛰어든 연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비를 털어가면서까지 하나의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히 뛰어온 그다. 비록 공연장의 문은 닫혔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금 공연장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기를 바라며 연습장에서 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던 엄 대표를 만나봤다.

 

◆학창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꿈’

“학창시절 때부터 연극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후 대학교에서도 연기 관련 전공 학과에 입학해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극단을 차리며 배우로도 활동하는 동시에 연출가로로도 활동하고 있죠.”

엄 대표와 연극의 만남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연극이라는 예술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 말이다.

“학창시절을 고향인 속초에서 보냈습니다.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연극부에 들어가 처음 연극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속초뿐만 아니라 타 지역 극단에 몸을 담고 있었던 예술인들 또한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면서 대학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됐었던 거죠.”

그가 연극을 하는 데 있어 대전이라는 지역을 택한 데엔 무엇보다 대학 진로의 영향이 컸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같이 연극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만의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데 마음이 통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극단이라는 단체가 필요하다보니 대전에 아라리를 창단하게 된 거죠. 또래의 친구들을 책임져야하는 입장이었고 대전에서 연극 활동을 왕성하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된 거죠.”

비록 야심차게 준비한 극단이었지만 수입은 변변찮았다. 수익은 고사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지금껏 아라리를 운영해온 그다.

“내년이면 4년차를 바라보는 극단이지만 지금껏 빚을 내지 않고 공연을 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이 컸죠. 그럼에도 모든 동료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며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아르바이트까지…‘지원 한계’ 아쉬움도

“극단 아라리(我羅理) ‘나는 아름다운 리(理)’를 담아 순리적인 존재를 뜻하는 극단입니다. 아라리는 즐거운 예술을 창조하자는 소망을 담아 창단됐으며 빛나는 예술이 되고자 하는 희망을 지니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찰나 같은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고 또렷하게 기억해내 공연으로 보여드리며 많은 이들과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게 우리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모든 예술가들이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넘어야할 산은 대부분 경제적 문제로 직결된다. 엄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된 공연은 차일피일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4월 예정됐던 공연이 코로나19로 인해 밀리다 밀려 10월로 연기됐죠. 처음엔 극단 자체적으로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에 연기라는 조치를 취했지만 지금은 강제적으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극단 동료들은 중학교에 연극 수업을 나가거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뮤지컬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조차 아쉬워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거죠.”

대전에 터를 잡은 엄 대표에게 아쉬운 점 또한 없진 않다. 아무래도 신인 문화예술인이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를 이끌어줄 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전이 문화 인프라가 열악하다고들 하는데, 대전은 타 지역과 비교해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사업이나 정책들이 비교적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지원 대상에 있어 편협한 부분이 없진 않죠. 보다 새로이 예술을 시작하는 이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밖에도 단순히 예술을 지자체나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한 활동으로 여기는 일부 문화예술인 또한 없지 않아 아쉽죠.”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주는 ‘연극’

“연극인은 현 세대를 대변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역사와 관련된 연극을 해왔던만큼 지역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 켠엔 늘상 있죠.”

유독 역사에 관심이 많아온 엄 대표가 꿈꾸는 연극 또한 우리나라만이 가진 역사를 다루는 거다. 지금껏 다수의 역사 연극을 무대에 올렸던 그이지만 아직까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거다. 시민들과의 소통 또한 그가 바라는 빼어놓을 수 없는 예술 활동 중 하나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통해 보다 지역의 이야기가 퍼지길 바랄 뿐이죠. 코로나19 사태가 조금은 나아지면 시민들이 공연장을 찾아와 문화예술, 연극, 뮤지컬, 댄스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극단 자체적으로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에 들어선 엄 대표에게도 숱한 고난은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고비때마다 그를 붙잡아줬던 건 동료들이다.

“코로나19를 경험해보니 바로 내일조차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게 사실이죠. 단지 그동안 남들의 도움 없이 우리가 연극을 준비하고 자비로 무대를 만들고 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그러한 노력들이 담보돼있더라도 못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연을 하는 게 꿈을 같이 꿨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죠.”

취미 활동을 업(業)으로 이어온 그인만큼 청년들에게 던진 조언도 남다르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 안정적인 직업 또한 어떻게 보면 본인이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하는 것이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이 택한 일이 취미로 또는 새로운 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요즘 청년들이 부모님 또는 주변 사람들의 방향에 따라 이끌려 가는 경향이 없진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죠. 보다 청년들이 자신들이 택한 업에 대해선 불안감을 떨치고 자신있게 나아갔으면 바랄 뿐입니다.”

글·사진=강정의 기자 justice@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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