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다. 맘으로야 항상 함께 하고, 아파하고, 맺힌 것이 속 시원히 풀리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맘을 바쳐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까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서 일어난 그 무엇을 풀 때는 한 칼에 베어 끊듯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더욱 간단치가 않다. 이렇게 얽힌 문제들을 풀려고 애쓰고 노력한 분들은 그 문제와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한발 짝 뒤로 물러나 살펴보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할 때는 조금 떨어져 있는 누구인가의 말이 필요하기도 하다.

일본군 정신대 문제는 해결하기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다. 그 때 피해를 입은 어느 개인들 문제만도 아니고, 나라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런 피해를 입은 분들이 스스로 자원하고 정신대에 갔다는 논리도 있고,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판단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결단하여 갔느냐 강제로 끌려갔느냐를 가르는 것이 핵심 문제는 아니다. 잘못한 이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느냐 아니 하느냐, 그것을 듣고 용서를 하느냐 아니 하느냐는 것도 핵심 문제는 아니다. 세상 어느 누가 군대 위안부의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작정하고 지원하는 수가 있을까? 그것은 인간으로서 스스로 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그런 사람들에게 가벼운 맘으로 어려움을 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제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렇단 말이다. 이 부분은 개인 차원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받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모멸스런 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단 말은 아니다. 개인의 문제요 국가라는 집단의 문제가 함께 얽혀 있어 풀기가 더욱 어렵단 말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여러 해 동안 외치고 시위를 하였던 것은 단순히 그 개인들이 사과를 받고, 보상금을 받는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그 당한 일이 수모이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큰 용기를 내어 세상에 그 일을 드러낸 것은 나 하나의 희생으로 역사상 어디에서도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간절한 맘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혹시, 사과와 보상을 만족스럽게 받는다고 할지라도 상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은 그런 부당한 행위 자체의 부당성을 인증하는 것이요,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위한 상징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추어질 수 있던 일을 만천하게 드러낸 일은 인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의 행위와 같고, 그 언덕에서 ‘전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과 같은 행위라고 나는 본다. 그 일을 당하던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움과 노년이 되어 끊임없이 되새김하는 아픔과 상처를 반복하던 것은 바로 인류 역사를 위한 깊은 예방과 치유의 과정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들과 그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일로 전 세계는 그 문제에 대하여 깊게 성찰하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비슷한 일들을 되돌아봄을 떠나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깊은 결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일은 무엇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본다.

이제 어떠한 형태로든 그 문제의 매듭을 풀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들은 몇 분 남지 않았다. 모두가 다 초 고령이요, 건강 역시 탁월하게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서서히 그 할머니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면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할머니들과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애쓴 분들이 깊게 생각하고 상의하여 결단하시면 좋겠다. 일본 군부통치세력과 군인들이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안다. 그것을 그들은 이미 다 사과하였다고 하고, 피해자들이나 한국 정부에서는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측이 서로 만족할 어떤 합의에 도달하기는 이미 시간이 지났다고 본다. 그러므로 할머니들과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일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 진정한 사과를 바랬지만, 더 이상 사과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일본정부와 시민은 자신들에 의하여 더 이상 우리 역사상에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전 인류 앞에 하여 주기 바란다. 이 일과 관련하여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주장하지 않겠다. 인류 역사에 그 사건들은 지워지지 않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기 바란다. 그 대신 당당하고 올곧게 양국관계를 다시 설정하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하여 주기 바란다.’

2. 이것을 받아 한국정부와 시민들은 할머니들의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를 크게 위로 하면 좋겠다. 일본정부에 대하여 정부 차원에서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우리 정부의 힘으로 할머니들의 문제를 충분히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우리의 역대 정부는 이 문제를 할머니들의 개인문제에 맡기거나, 할머니들과 상의 없이 합의에 도달한 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할머니들과 정부가 충분히 대화하고 협의하여 우리 차원에서 종결할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나 어떤 정부를 통하여서도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 세계를 향하여 철학과 정책을 펼 것을 약속하면 좋겠다. 동시에 일본정부에 대하여 이 문제를 우리 스스로 종결함을 선언하고, 한일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고 나가면 좋겠다. 이런 일은 지는 듯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듯하지만, 길게 보면 한 차원 높은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엉거주춤한 듯하나, 그러나 깔끔한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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