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2년 반 전, 우리 사회가 미투운동으로 달아올랐을 때, 그것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가부장적 구조와 일상화된 성폭력을 혁파하는 거대한 물결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썼다. 그 때, 공공기관의 정규직 남성인 데다가 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역할 자체도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일 수 있으므로, 언행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나도 부지불식간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누가 물었을 때 나는 말했다.

어떤 변명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피해자의 뜻에 따라 사과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세로 살 것이라고 했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년 반 동안 미투운동은 계속 이어졌는데, 가해자들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한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유명 정치인, 고위 검사, 연극 연출가, 시인, 인간문화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영역에서는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이 미투 운동 앞에서는 몹시 억울한 것처럼 행세했다. 심지어 피해자를 비난하고 법적 대응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앨 프랭큰(Al Franken)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미국 NBC의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방송 대본 작가로 활동했고, 라디오 토크쇼 ‘앨 프랭큰 쇼’도 진행했으며, 2008년에 미네소타주에서 연방 상원으로 출마하여 당선한 사람이다. 2017년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라디오쇼 호스트인 트위든(Leeann Tweeden)이 과거 프랭큰이 코미디쇼 리허설 중에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했다는 증언을 했다. 뒤이어 몇몇 여성들이 프랭큰이 사진을 찍을 때 여성 엉덩이에 손을 얹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사퇴를 요구하자 프랭큰은 곧바로 사퇴했다. 미투운동과 관련해서 가장 신속한 사퇴였고, 한편에서는 미투운동에서 가장 가벼운 케이스였다고도 한다. 미국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가 아닐까. 앨 프랭큰 사례를 알게 해준 사람은 미투운동은 피해자 여성이 법에 호소할 때 항상 수반되던 불평등한 사회적 압력을 중화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썼다. 그 사회적 압력은 ‘꽃뱀’과 같은 단어로 대표되는 피해자 공격, 학교나 직장에서의 퇴출 위협, 행실 운운하는 사회적 낙인으로 이루어진다.

정신과 진료를 하는 어떤 의사가 쓴 글을 보았다. 유명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그 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된다. 조롱과 멸시와 의심으로 인해, 다시 한번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며 무너진다. 그들에게 그 일은 지나간 일이 아니게 되고 세상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된다. 남성들이 공공연히 2차 가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남자들은 차라리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좀 닥치고 있어야 한다. 그냥 아무 말도 안하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누군가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후벼파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언론을 통해, 진보정당의 주요 당직에 출마한 후보가 극단적 페미니즘과 결별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운동이며, 남녀의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 후보자는 아는지 모르겠다. 극단적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기실 일베나 극렬 보수들의 더 극단적인 반인간적 여성혐오 행위가 조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역사는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넓혀온 역사이며, 진보정당은 특정한 계급 계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당이라는 사실은 알 것이다. 극단적 페미니즘과 결별을 말하기 전에 제대로 페미니즘 공부하고 실천하겠다고 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후보다운 자세다. 그렇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 입 다물라.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