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메테오라 개발 전 풍경사진
호텔 로비의 그림들

메테오라(Meteora) 수도원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가량 떨어진 테살리아주의 작은 도시 칼람바카(Kalambaka)에 있다. 칼람바카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뜻이고,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칼람바카 마을 뒤의 험준한 뾰족한 산봉우리의 바위들 속에는 12~16세기에 지어진 수도사들의 은둔처인 수도원들이 있다. 

메테오라는 칼람바카에서 숙박하고 여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테네에서 일찍 기차나 버스를 타고 출발한다면 당일 여행도 가능하다. 즉, 아테네역에서 오전 7시 20분 출발 직행 열차를 타면 3시간 10분 만에 칼람바카에 도착하고, 메테오라 수도원을 관광 후 오후 5시에 출발하는 직행 열차를 타면 아테네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BC 480년 페르시아의 2차 그리스 침략전쟁 때,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Leonidas: BC 487~ BC 480)의 스파르타군 300명이 최후까지 장렬한 죽음으로 저지했던 테르모필레(Thermopylae)를 들른 탓에 버스를 타고 칼람바카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테르모필레에 관하여는 9월 16일 자 테르모필레 참조) 

칼람바카 시내

칼람바카는 세계 각국에서 메테오라 수도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붐비는 관광지여서 거리는 관광버스들과 택시, 유럽 각국의 다양한 스타일의 자동차들로 거리와 골목이 그득 찼고, 또 음식점이나 호텔, 기념품 가게들이 온통 다양한 풍경 사진으로 도배하듯 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 특유의 간단명료한 그림이나 기념품들은 매우 본받을 만했다. 

4세기 말 로마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가톨릭은 정치적 차이, 언어적 차이 등 여러 이유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리되었다. 서로마는 로마에서, 동로마(비잔틴제국)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교리가 신학적 대립으로 변하고, 8세기경에는 성상(聖像) 숭배 문제로 번지더니, 1054년 서로마의 가톨릭과 동로마의 그리스정교로 분리되었다. 

발람수도원
수도원 현관
수도원
메테오라 수도원

수도원 제도는 4세기 초 이집트에서 성 안토니우스(St. Antonius: 250~355?)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수도원은 수사와 수녀가 일체의 금욕과 끊임없는 기도로 개인의 구원과 함께 하느님과의 연합을 시도하는 은둔형 기도원으로서 기독교 전파, 로마 주교들의 권위 향상, 학문의 보존과 증진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5세기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 대제는 이집트의 금욕주의적 훈련을 로마에 받아들임으로써 로마제국에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유럽에서 수도원 제도를 확립한 것은 이탈리아 중부도시 몬테카시노의 성 베네딕투스(St. Benedictus: 480?~547?)였는데, 그는 수도원장의 권위를 강조하고, 금욕생활, 주야로 정해진 시간의 기도와 찬송 등을 따르도록 서약하게 했다. 그러나 수도원은 13세기부터 유럽 주요 도시에 대학이 설립되자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1346년 유럽에서 수도원의 중심이던 아토스산이 세르비아령으로 편입되자, 성 바실리우스(St. Basilius : 329?~ 379?)가 이곳을 떠나 소아시아(터키)의 카파도키아에 남녀수도원을 세웠다. 또, 1350년 성 아나타시우스(St. Anatasius)가 메테오라에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는데, 카파도키아의 수도원이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하는 것과 달리 메테오라 수도원은 사회와 격리되어 수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산간도로(왼쪽)와 수도원들
니콜라스 아나퍼스 수도원 입구

원래 삼각주였던 테살리아 평원인 칼람바카의 페네야스 계곡은 400m 이상 우뚝 솟은 험준한 바위산인데, 수도사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곳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연결되는 도르래 같은 밧줄과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두레박 같은 것으로 수도사들이 타고 오르내리거나 생필품을 공급했다. 

수도사들은 금욕생활을 하고, 한발이라도 더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지어 기도하면 천국에 가까이 다가서려고 했는데, 16세기에 메테오라에는 모두 24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수도원은 필사본들과 16세기 프레스코화를 많이 보존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가 관광객들을 위하여 험준한 산속까지 도로를 개설하고, 수도원이 있는 높은 바위까지 계단을 만들거나 계곡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 다리를 설치하여 관광객이 몰려들자 젊은 수도사들은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메테오라 수도원(1356)을 비롯하여 발람 수도원(Varlaam: 1530), 로사노 수도원, 세인트 니콜라스 아나 퍼프사스 수도원(1458), 그리고 올라가기가 가장 힘든 트리니티 수도원 등 수도원 5곳과 성 스테파노 수녀원(Aghios Stephanus: 1312) 한곳이 있다. 가장 유명한 발람 수도원은 계곡 절벽에서 수직으로 무려 373m나 끌어올리는 데 사용되었던 그물이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1988년 UNESCO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호텔에서 조반을 마친 우리는 메테오라 수도원을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수도원을 직접 들여다보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가 찾아간 성 니콜라스 아나 퍼프사스 수도원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철 대문이었으며, 그 옆에는 수도원을 입장하는데 필요한 간단한 주의사항이 그리스어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우리는 입장료 3유로를 내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수도원마다 개장시간과 폐쇄시간이 달라서 관람할 수 없는 때도 있다고 하는데, 성 니콜라스 아나 퍼프사스 수도원은 매일 오후 3시까지만 입장이 허용하며, 금요일에는 폐쇄한다고 했다.

세인트 스테반 수도원
홀리 트리니티 수도원

또, 남자는 반바지와 짧은 티셔츠 차림, 여성은 바지 차림과 소매 없는 셔츠차림은 입장이 되지 않는 것이 공통사항이었다. 그렇지만, 이슬람 국가의 사원 모스크(Mosque)를 입장할 때에도 이런 복장 제한이 있어도 대부분 입구에서 돈을 받고 치마 등을 빌려주고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바위길 사이를 톱니바퀴처럼 깎아서 계단을 만들 길을 빙빙 돌아서 올라갔는데, 군데군데 가파른 곳에는 옆에 암벽 등반할 때처럼 밧줄을 설치해 두어서 그 밧줄을 붙잡고 올라갔다. 대부분 수도원은 수사(修士)의 개인 기도실, 물탱크, 1~2개의 교회당, 휴게실이 있고, 도서관이 있는 곳도 있지만, 이곳은 3~4평쯤 될까 싶은 좁은 공간 중앙에는 십자가와 성물이 있고, 그 옆 구석에 숙소로 보이는 방이 따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수도원을 내려온 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지막에 찾아간 세인트 스테파노 수도원은 여성 수도사 전용 수도원이었다. 이곳은 다리가 불편하거나 걷기 힘든 사람에게 접근이 가장 쉬운 수도원이다. 메테오라를 하산하기 전에 포토존이라고 하는 전망대에서 메테오라의 전경을 살펴보며,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했다. 한쪽에는 수도원들이 있는 테살리아 계곡(Thessaly valley)이 보이고, 다른 방향으로는 피니온스(Pinions) 강이 흐르는 평야와 그 너머 핀두스(Pindus)산맥이 펼쳐지는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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