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살아 숨 쉬는 돈암서원
  • 금강일보
  • 승인 2020.09.2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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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경태 이문고 교사

[금강일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교육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교외 활동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1학기에는 “조금만 더 참으면 활동할 수 있겠지”, “2학기에는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미루다가 방학 같지 않은 방학을 보내고 2학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2학기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아 코로나의 기승은 아직도 여전한 가운데 벌써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조금씩 불안해진다. 많은 고민과 숙고 끝에 동아리 학생 중에서 역사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 몇 명과 지난 토요일 돈암서원을 답사했다. 우리 지역 향토역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다가 보니 자연스레 우리 고장 선비들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을 탐구하고 돈암서원 답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엄중한 코로나 상황임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개인차량으로 답사를 했다.

돈암서원은 지난 1634년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논산시 연산면 임리 숲말에 건립하였다. 그 후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돈암서원 뜰 앞까지 물이 차자 188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돈암은 숲말 산기슭의 큰 바위 이름이었는데 효종이 이 바위 이름으로 사액을 하여 서원의 이름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돈은 본래 은둔 혹은 둔세를 의미하는 둔으로 주자가 말년에 사용한 둔옹의 호에서 왔다는 이도 있고, 국왕의 부름도 사양하고 고향인 이곳에서 은둔하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사계의 일생을 상징한다는 이도 있다.

돈암서원은 무엇보다도 큰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난다고 사계의 문하에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 걸출한 문인들이 즐비하여 명문 사학을 이뤘다. 그리고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기호학파 학문의 메카로 조선 후기 사상과 예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온전히 보존된 대표적인 서원이다.

1950년 대둔산에 있던 황강 김계휘가 지은 정회당을 이건하고, 1971년 돈암서원 옛터에 있던 응도당을 사계가 지은 양성당이 있는 이곳으로 이건하여 3대의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는 유일한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1997년 거경재와 정의재를 신축하고, 2006년 유식 공간인 산앙루를 뒤늦게 건축하는 등 성장과 진화를 거듭하면서 201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이제는 지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인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 지역 선비들이 모여서 책 읽고 토론하고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펼치던 이곳에서 “우리의 예절을 우리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하는 만인소 운동과 예절사관학교 등으로 현대에 맞게 새롭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사원스테이를 하면서 옛날 우리 선현들처럼 자유로운 학문의 향연을 펼쳐나가길 기대한다. 또 우리 학교도 인재의 숲을 이루어 먼 훗날 돈암서원처럼 역사에 기록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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