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코비드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6개월 이상이 되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불끈불끈 일어나곤 한다. 이전에는 1년에 2~3개월은 국내 아니면 국외 여행을 즐기곤 했다.

여행을 통해서 삶에 새로운 활력소도 찾곤 했었다. 여행은 다른 환경에 대한 경치만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경치를 어떤 의미로 느끼는지에 따라 내 삶을 쳐다보는 내 모습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늙어가는 나에게는 즐거움이고 생의 다른 느낌을 받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극도로 자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인내하고 있다. 대신 나는 계족산을 주 3회 정도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이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다녔지만 그것까지도 금하고 혼자서만 산행을 하고 있다. 혼자서만 걷는 산행길이 갖는 좋은 점도 있다. 주변에 대한 풀, 나무와 숲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계족산의 숲의 기운은 여름 숲의 기운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름 숲은 울창하고 무성하여 초록이 넘쳐서 검은빛을 발하면서 세력이 강하게 보이지만 대기의 흐름은 정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름 숲은 조금은 답답함을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을 산에는 여름의 검은 빛은 산골짜기 속으로 잦아들며 산 위에서부터 가을 소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9월의 숲은 새로운 기(氣)의 흐름을 생성한다, 꾸준히 산을 다니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여름 숲과 가을 숲의 차이점이다. 따라서 가을 숲에서는 더 많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임도길에는 가장 먼저 낙엽이 떨어지는 벚나무 잎은 지난 태풍 때문에 벌써 다 떨어진 나무도 많고 잎이 있는 나무도 반 이상이 이미 다 떨어졌다. 그러나 가을 단풍의 주를 이루는 단풍나무와 갈참나무 계통의 나무들은 그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또 생강나무 잎모양도 산(山)자 형상을 뚜렷이 나타내며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은 내년을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길가에는 물봉선화의 빨간 꽃, 산 박하의 푸른 빛의 꽃, 참싸리의 붉은 꽃, 달개비의 파란 꽃,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그들의 특유의 부끄러운 듯이 꽃을 피우는 계족산은 내 마음의 천국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산에 오지 말아야할 사람들이 산행을 하는 것이 참 보기 싫다. 금년이 절기가 빨라서 밤들이 이미 다 익어서 밤송이가 벌어져서 밤알들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길가에 나온 밤알들을 숲속으로 던진다. 계족산에 사는 동물들의 겨울 식량이기 때문이다. 그 밤들을 주어가는 사람들이 나는 참 밉다. 꾸준히 다니면서 관찰해본 결과 세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단순호기심형’이다. 산행을 왔다. 무심코 떨어진 밤을 보고 재미있게 생각하고 하나둘 주워가는 형이다. 이는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아 애교 있어 보인다. 두 번째로는 ‘견물생심형’이다. 이는 무심코 발견하고 나서 욕심이 생겨서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서 땅속에 묻힌 것까지 다 파서 갖고 가는 형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놀부가 연상된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세 번째 형이다. ‘주도면밀형’이다.

이 형은 대개 부부가 함께 와서 밤을 주울 집게와 밤을 담을 앞주머니까지 차고 와서 줍는다. 마치 밤 줍는 일꾼들이 밤을 줍는 것처럼 하고 있다. 외모로 볼 때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 행동을 한다. 그리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매년 와서 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숲속에 있는 밤나무까지 찾아가 줍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니다가 보면은 “산 짐승들 먹게 숲에 남겨두세요”라고 말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산행을 하는 우리들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당국에서는 가을 산에 있는 야생 밤, 도토리를 주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경비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보며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산에 있는 야생 열매는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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