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문서 막고굴에 꽁꽁 숨겨져있던 이유는?
  • 송나영 기자
  • 승인 2020.09.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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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문서 막고굴에 꽁꽁 숨겨져있던 이유는?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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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황이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면서 화제인 가운데 돈황문서가 관심 집중이다.

돈황은 장안과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에게 비단길의 시발지이자 마지막 기착지였으며 동서양의 민족과 종교가 교차하여 독특한 세계적 문화특성을 보였다.

현재 약 1만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감숙성 돈황현, 그 동남쪽에 명사산(鳴沙山)이 있다. '모래가 우는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래산이다. 그 산 중턱에 약 1.8km에 걸쳐 석굴들이 떼 지어 있다. 5호 16국 시기인 366년, 전진의 승려 낙준이 처음으로 석굴을 파고 수행을 시작한 이래로 11세기 북송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굴을 파고 수행을 하여 천여 개의 어마어마한 석굴군이 조성됐다.

 

현재 492개가 발굴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데, 굴 안에는 사방 벽면과 천장에 휘황한 불교회화가 장식되어 있고 수많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돈황 막고굴(莫高窟)'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유홍준은 "돈황의 문서를 발견한 사람은 자칭 도사라고 하는 왕원록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왕원록이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섭외해 불경을 쓰게 해서 그것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 불경을 쓰던 친구가 벽을 등지고 불경을 쓰던 중 담배를 벽에 비벼 껐더니 연기가 벽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라며 "왕원록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연기가 빨려 들어간 곳을 팠다. 그랬더니 제17굴이 있더라. 그곳에 돈황문서가 가득했다"라고 전했다. 

유홍준은 돈황문서가 벽 속에 숨겨져 있던 이유에 "서하와 전쟁을 치르던 중 서하를 피해 급히 피난시킨 것이라는 것이 한동안의 정설이었다"며 "그 안에 있는 돈황문서가 3세기부터 11세기까지만 기록돼 있다. 전쟁의 시작과 돈황문서 마지막 기록 시기가 일치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이슬람 카라한 왕조가 불교를 박살낸 사건이 있었다. 이슬람 카라한 왕조가 쳐들어 온다고 하니 이를 대비하기 위해 피난시켰다는 설도 있다"며 "하지만 근래에 새로운 학설이 나왔다. 피난시킨 것치고는 완벽하게 정리가 돼 있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것은 불경을 함부로 폐기시킬 수 없어서 벽에 공손하게 존경스럽게 폐기시킨 것이라는 설이 있다"라며 "인쇄술 발달 전에는 손으로 필사했는데 그 당시에는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송나라에서 목판으로 깔끔하게 만든 경전이 나오니 필사본은 벽에 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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