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문학평론가

이번 추석 명절의 모습은 코로나19로 예년과 많이 달라졌다. 민족 대이동에 따른 대규모 감염의 위험을 막으려는 정부의 간절한 바람으로 정든 고향을 찾는 귀성인파는 좀 줄어든 듯하다. 농어촌을 지키는 연로한 부모님들이 감염에 취약하기에 직접 대면을 최대한 삼가는 것이 오히려 효도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고향을 지키는 부모님들이 나서서 ‘불효자는 옵니다’란 현수막을 내걸었겠는가.

하지만 막상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귀성인파로 인한 교통체증은 예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하다. 개인 방역이 생활화되고 시민의식도 높으니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길 바라지만 조심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나도 부모님이 생전에 고향을 지키실 때는 정말 고단한 귀성 전쟁을 치렀다. 양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이젠 우리 집이 애들이 찾아오는 고향이 됐다. 힘겹게 멀리 떠나는 교통 전쟁에서 벗어난 대신, 네 명의 손자들을 포함한 열 명의 대가족이 며칠을 함께할 먹을거리와 놀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손이 크고 음식 솜씨가 좋은 아내는 아이들이 북적대며 기름 냄새를 풍겨야 제대로 명절 맛이 난다며 큰일 치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조심스레 몸을 사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답답함이 그간 미뤘던 아내의 소망을 일깨웠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농막과 텃밭을 갖춘 전원주택을 월세로 빌려, 꽃이나 작물을 심고 가꾸는 재능을 적극적으로 살린 것이다. 산 중턱에 높은 축대를 쌓아 만든 주택지라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좋지만, 황량하던 텃밭을 온몸으로 일궈 예쁜 꽃들이 피고 작물들이 풍성하게 자라는 곳으로 만드느라 그예 오른팔에 병이 난 것이다. 정형외과도 다니고 운동치료도 받으며 조금씩 호전되고 있어도 주방일을 하기엔 아직 무리다. 동작이 굼뜨고 부엌일에 서툰 내가 옆에서 조수 노릇을 하지만 아내 마음에 턱없이 부족하니 여러모로 불편한 셈이다. 연휴 전날 고기와 생선 등 장을 보면서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화했다.

연휴 첫날은 마침 아들 생일이라 아들네 가족을 전원주택으로 불렀다. 아들이 평소에 파전을 좋아해 옥수수를 베어낸 자리에 쪽파를 심었는데 쑥쑥 자란 파를 뽑아 즉석 파전을 할 요량이었다. 공주 공산성 시장까지 가서 구한 쪽파 종자를 머리 부분을 잘라내고 조심스레 흙에 묻을 때만 해도 잘 자랄까 싶었는데,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자라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얼갈이배추와 동치미 무를 심은 곳부터 물을 주는데 아내는 얼른 쪽파를 솎아내 오징어와 새우를 넣고 버무려 파전을 부친다. 아들은 역시 엄마의 파전이 최고라며 좋아하고 손자들도 맛있게 먹으니 아내도 웃음꽃이 핀다.

사실 아내는 농촌과는 인연이 먼 도시 출신이다. 군사도시인 춘천에서 방앗간 집 큰딸로 태어나 보리밥은커녕 사흘만 고기를 안 먹으면 병이 날 정도로 귀하게 자라, 시커먼 보리밥을 먹으며 자란 나와 많은 문화적 차이가 난다. 나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쭉 도시에서 살며 고향의 가난과 힘든 농사일에 대해 한 점 미련도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굳이 월세를 주고 얻을 때도 나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60대 중반이 된 아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매서운 샛바람 속에 시작한 텃밭 가꾸기로 로즈메리와 백일홍 그리고 해바라기가 어울려 피고 무와 배추 등이 풍성하게 자라는 곳으로 바뀌었다.

아내는 내친김에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에서 오랜 꿈이었던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겠다며 덜컥 땅을 샀다. 불과 며칠 만에 그것도 은행 융자를 끼고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당황스럽지만 이 또한 아내의 버킷리스트라니 어찌 말리겠는가. 난 그냥 지금의 아파트 거실에서 저만큼 보이는 산자락과 아파트 단지 내 둥근 팽나무 광장과 샛길이 난 작은 공원으로 충분한데, 꼭 내 집 마당을 둬야 하나 싶다. 하지만 칠순을 앞둔 나이에 이제 아내의 버킷리스트를 내 소망으로 삼는 것이 두루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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