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대전시민대학 유머달인 강사

1982년에 나와 아들은 거문고를, 아내와 딸은 가야금을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배웠다. 당시의 대전은 소위 국악 불모지였고, 시립국악원 초대 원장이신 연정 선생님은 대전 국악의 개척자셨다. 그러다보니 당시의 국악원 수강생 1기는 대전 국악 보급의 선두주자로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각별히 나를 아껴주시던 연정 선생님께선 절친인 명창 박동진 선생님이 국악원에 오시면 꼭 나를 불러 소개를 해주셨다. 두 분은 워낙 자별한 사이여서 만나기만 하면 ‘욕 배틀’이 시작됐다.

험한 욕지거리 같지만 사실은 모두 판소리에 나오는 풍자사설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배팅에서 지는 사람이 점심을 사는 것이라 매우 치열했다. 육두문자에 시궁창에 빠져 죽으라는 막말까지 고성이 오갔다. 배틀의 끝은 항상 박장대소였다. 그간의 모든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는 두 분의 난자한 욕 사설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춘향가의 어사또 출도에 정신을 잃고 허둥대는 관리들을 묘사하는 장면(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어라)이나 흥부가에서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 집에서 화초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화초장’이라는 이름을 까먹고 나서 이름을 생각해내기 위해 펼치는, 놀부 심보를 들어내는 사설(‘초장화? 아니다 장화초? 아니다 화장초?’ 그러다가 ‘장’자가 나오는 말을 모두 나열한다. 간장·고추장·된장·방장·천장·구들장…)등을 잘 섞어서 써먹은 욕들이었던 것 같다. 진정한 풍류객인 두 분은 이제 다 돌아가셨지만 그 박장대소 웃음은 영원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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