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바람만 불어도 설렜는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는 싶은 것만 보니

알갱이는 떨어지고 쭉정이만 남아
덕지덕지 엉킨 완고한 생각으로

목이 곧은 나는 울림을 상실했네
사랑과 긍휼을 잃고 말았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슬퍼하지 않네

군눈 팔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
하늘의 아픔이 바람에 묻어있네

바람의 생채기
에이는 통증

풍요 속의 반거충이
통풍을 앓고 있네

통풍을 앓다가 아플 통(痛) 자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모든 질병의 이름은 병들어 기댈 역(疒) 자를 갖고 있다. 병 병(病), 증세 증(症) 자는 물론 전염병 역(疫), 암 암(癌), 홍역 진(疹), 상처 흔(痕), 피로할 피(疲) 등이 그렇다. 역(疒) 자의 부수 이름은 ‘병질엄’이다. 사람 인(人)과 나무 조각 장(爿) 자를 합쳐 침대에 앓아누운 사람의 그림에서 나온 글자가 역(疒)이다. 

병 질(疾) 자는 역(疒) 자 안에 화살 시(矢) 자가 들어있다. 사람이 화살을 맞아 아프다는 걸 표현한 회의문자다. 병 질(疾) 앞에 계집 녀(女)를 붙이면 질투할 질(嫉) 자가 된다. 옛날 사람들은 질투(嫉妬)를 여자에 있는 병(疾)의 일종으로 봤다. 

고칠 료(療) 자는 역(疒) 자 안에 병을 끝낸다는 의미의 횃불 료(尞) 자가 들어있다. 생채기가 다 나아 딱지가 떨어지면 흉터와 같은 흔적이 남는데, 흔적 흔(痕) 자에는 아픈 곳이 그쳤다는 뜻으로 그칠 간(艮) 자가 들어있다. 

온몸이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만신창이(滿身瘡痍)의 창(瘡)과 이(痍)에도 역(疒) 자가 있다. 창(瘡) 자는 원래 부스럼이나 종기를 말한다. 하지만 칼과 같은 쇠붙이에 찔리거나 베인 상처도 창(瘡)이라 한다. 이(痍) 자는 상처를 말한다. 만신창이는 온몸이 칼이나 창 따위의 날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투성이라서 어떻게 해볼 수조차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의 고질 고(痼), 몸에 찬바람이 들어 생긴 병인 두풍 풍(瘋), 가장 무서운 병인 암 암(癌)에도 어김없이 역(疒) 자가 들어있다. 치매(痴呆)나 천치(天痴)에 쓰는 어리석을 치(痴) 자는 지(知)적인 능력에 병이 걸렸다는 뜻이다. ‘질병(疾病)’은 지금 한 단어로 쓰이지만, 원래는 각기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병 질(疾) 자는 골절 등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병을 뜻하고, 병 병(病) 자는 폐병과 같이 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병을 지칭했다. 

염병 역(疫) 자에는 부릴 역(役) 자의 간략형이 들어있다. 장티푸스는 염병(染病)이라 하고, 역병(疫病)은 돌림병이다. 홍역(紅疫)·구제역(口蹄疫)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에볼라(Ebola)’를 ‘아이보라역(埃博拉疫)’이라고 표현한다. 그 역시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역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갑골문에 남아있다. 병(病) 자나 질(疾) 자는 기원전 13세기 상(商)왕조 시기 남겨진 갑골문에서 처음 출현했다. 갑골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 시대 역병은 약 16~20종류다. 주(周)나라 때부터 역사책에는 대역(大疫, 역병의 대유행)이란 글자가 자주 나오기 시작한다. 수(隋)양제(煬帝) 말기부터 당(唐)나라 초기까지 약 40년 동안 7차례나 역병이 대유행했다. 이런 상황에도 수양제는 무리하게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가 실패했고 이는 왕조 교체로 이어졌다. 

지난 40년 동안 주로 가축에게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호흡기·소화기 관련 감염병 사례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체로 보고됐다. 대표적으로 조류 전염성 기관지염 바이러스[IBV], 돼지 유행성 설사병 바이러스[PEDV],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바이러스[FIPV], 소 코로나바이러스[BCV] 등이 알려져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그리고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매체도 인수(人獸) 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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