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 보랏빛으로 물든 대청호 5구간. 햇살을 품은 해바라기와 보랏빛 아스타 꽃이 대청호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금강일보 조길상 기자] 멀게만 느껴지던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유례없이 긴 장마가 찾아왔던 올 여름, 더위도 더위지만 습한 날씨 때문에 에어컨이 쉬는 날이 드물었는데 어느새 그 녀석을 찾지 않아도 되는 계절이 왔다. 청명하게 맑은 파란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이 떠있는 이 계절, 누구보다 먼저 가을을 맞이하러 대청호를 향한다.

 

흥진마을 갈대·억새 숲길 거닐면
화려한 은빛군무 동화 속을 걷는듯
근장골전망대 오르면 다도해 향연
가을낭만이 넘실대는 호반낭만길
色을 입은 호수가 계절을 수놓는다

 

근장골전망대에서 본 대청호
사슴골 가는 길. 호수에 나룻배가 떠있다.

 

대청호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을 찾겠건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나마 높은 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호반열녀길)에 있는 근장골 전망대가 첫 번째 목적지다. 3구간 시작점인 냉천버스 종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근장골 전망대’보다는 ‘호반열녀길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이곳에선 계절의 변화가 탐지된다. 근장골 전망대로 향하는 길, 나무들이 조금씩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모습에선 울긋불긋한 ‘새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인 색의 감상은 녹빛이 강하지만 대청호를 넘어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의 서늘함에서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에서도, 가을이 머지않았음이 느껴진다.

 

추동습지보호구역. 호반위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근장골 전망대를 내려와 가을하면 떠오르는 ‘추동’을 향한다. 넓게 펼쳐진 억새와 갈대의 은빛물결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으로 향하는 길,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논들이 눈에 들어온다. 농민들에겐 한 해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더해지며 더 반짝반짝함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한껏 무거워진 머리가 바람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혹시 알이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정말 쓰잘머리 없는 걱정 따위를 하며 한가로이 목적지를 향한다. 기대가 너무나도 컸던 탓일까. 추동생태습지의 모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 여름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내렸던 비로 잠시잠깐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던 이유에서인지, 아직 제 철이 오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머리숱이 그리 풍성하지 못하다. 기대했던 은빛물결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나 푸른 하늘과 대청호, 녹색의 산들과 나무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발품을 판 값으로는 충분하기에 잠시 앉아 멍하니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5구간 흥진마을 입구에 억새가 손짓하고 있다.
흥진마을 갈대&억새 숲길. 은빛억새가 파도치고 있다.
5구간 흥진마을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마지막 목적지 역시 갈대와 억새로 유명한 흥진마을이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백골산성낭만길)의 시작점이며, 가볍게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흥진마을 갈대밭 추억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흥진마을 갈대&억새숲길은 대청호 수변을 끼고 갈대, 억새숲길을 지나 돌아오는 약 3.1㎞의 둘레길이다. 길 양 옆으로는 풍성하게 자라난 갈대와 억새가 자라나 있어 걷다보면 마치 무릉도원의 한가운데에 와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다. 특히 이 계절엔 청명한 하늘과 푸른 물결,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의 갈대와 억새들로 절경을 이룬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과거의 풍성했던 갈대·억새숲이 이발을 한 것 마냥 잘려나가 그 덩치가 줄었다는 점이다.
소풍 나온 아이처럼 심각한 것 하나 없이 주변의 모든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마음껏 웃고 즐기며 걷다보니 갈대 대신 보랏빛의 이름 모를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잠시 서서 눈으로, 또 마음으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들이마신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에는 부담이 있는 최근이나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에도 답답함이 크다. 멀리 떠나고 싶지만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 때,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대청호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을은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니 말이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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