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천사에서 이 문장을 인용하며 “정 청장의 성실성이야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연 인류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4관왕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도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BTS)은 8월 말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여전히 각종 음원차트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 전문지 빌보드는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고 있다”며 놀라움과 찬사를 표시했다. 대중문화계에 BTS가 있다면 스포츠계엔 손흥민이 있다. 한 경기 4골을 몰아넣는 등 매경기 수준 높은 기량을 뽐내는 중이다. 부상 이후 출전한 최근 경기에서도 2골을 넣으며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던 고국 팬에게 뜻 깊은 선물을 선사했다.

한국인의 이름이 곳곳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코로나19로 힘들고 지칠 때 큰 위로와 응원이 된다. IMF 외환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그랬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강타자를 헛스윙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고 박세리가 골프공을 찾기 위해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던 모습을 보며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스포츠 등 일부 분야에만 국한된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 분야에서 전방위 맹활약이 펼쳐지고 있다.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소프트파워 강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적을 글자는 없었다. 한글 덕분에 우리는 명실상부 문화적 독립국이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었다. 한글이 곧 한국이고 한글이 우리를 세계와 연결한다. 574년 전, 이미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소프트파워 강국이었다.

코로나19가 우리는 물론 전 세계의 모습과 일상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비대면 시대일수록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글날을 맞아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가고 있는 우리가, 이런 위기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소프트파워가,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이유다.

소설 ‘페스트’에서 주인공 의사가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하자 페스트를 피해 도시 밖으로 탈출하려던 누군가 묻는다. “성실성이 대체 뭔가요?” 주인공은 이렇게 답한다. “내 직분을 완수하는 겁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소프트파워를 떠올리며 우리가 완수해야 할 직분을 생각하는 한글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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