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토닥토닥 대표

[금강일보] 대전에서 시작하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시민들이 ‘바람편지’를 띄웠습니다. 그 바람들이 책으로 모여 내달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시작이다’입니다. 6년 전 말 못 하는 한 아이의 바람은 기적처럼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의 작은 바람을 많은 시민이 바람개비로 돌려 큰바람을 만들어 내었고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중증장애어린이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줬을까, 하는 냉철한 되새김이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한 아이의 아빠도 편지를 보냅니다. 어릴 적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가장 강렬하게 가슴에 남은 건 ‘아버지’입니다. 내게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묵직한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뤄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내 이름보다는 건우아빠라는 말을 더 많이 듣습니다. 여기엔 지난 몇 년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비롯해 아이의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달려왔던 시간들이 스며있습니다. 스스로도 ‘김동석’보단 건우아빠란 이름으로 소개를 더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내 꿈이 이렇게 이뤄질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건우아빠는 사람들 앞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사과로 시작합니다. 내 아이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장애어린이의 현실을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민이 그러했듯 말이지요. 막상 건우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치료비 걱정은 했지만 재활치료 받을 병원이 없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습니다. 치료를 위해 지역을 떠나 수도권을 난민처럼 돌아다녀야 한다는 현실도 닥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왜 장애어린이들을 사회에서 볼 수 없었는지 겪어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어린이들과 그 가족에게 한없이 미안합니다.

내가 건우아빠로 불리는 동안 건우는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전국의 중증장애어린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후보 시절 대전에 오셔서 임기 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완공을 약속하며 건우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한 아이에 대한 약속만은 아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이뤄지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서기도 했고 시청·보건복지부·국회·청와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아빠란 이름은 이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아마 김동석으로선 결코 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건립이 확정됐을 때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건우아빠는 만족할 줄도 모르고 자꾸 뭔가를 요구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뭔가를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장애어린이에 대한 시혜 같은 것이 된 것 같았고 어떤 병원을 세워야 한다는 것보다는 돈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건우아빠라는 무게를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세상이 원한 아빠는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어린이들의 구체적인 치료·교육·돌봄 현실은 단 한 번도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장애어린이의 치료 수요는 축소 조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건복지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무시로 일관합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비가 비현실적이고 운영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건립의 근거가 되는 법이 없고, 대전시에는 조례도 없습니다. 어떻게 운영할지는 건물부터 짓고 나서 생각하자고 말합니다. 그럴수록 내가 외치고 싶은 한마디는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허태정 대전시장님, 박범계 국회의원님, 참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같은 아빠로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건우가 전국의 장애어린이를 대표하듯 전 국민을 대표하는 아빠로서 제대로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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