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 때 설계
많은 사람의 우려와 반발 속 인기코스 자리매김
발명왕 에디슨 '위대한 아이디어의 현장' 극찬

사요 궁 앞 포토존에서 바라본 에펠탑
에펠탑 입장행렬
에펠

파리의 랜드마크는 뭐니 뭐니 해도 파리 하늘을 300m나 치솟은 에펠탑과 사통팔달로 뻗어나간 도로의 시발점인 원형광장의 개선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자국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하여 현상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 : 1832~1923)이 설계한 철탑이었다.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미국 시카고의 홈 보험 빌딩(55m),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66m),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132.5m) 정도였는데, 에펠이 설계한 철탑의 높이는 무려 300m가 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우수한 토목 기술과 당시 최첨단 건축자재인 강철로 세운 철탑을 세계에 과시하려고 했지만, 과학자들은 강철의 무게로 철탑이 무너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또, 예술인들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파리 풍경에 투박한 철제 탑은 어울리지 않는 괴물 같은 존재라며 반발했고, 시민들의 여론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자 에펠은 탑이 무너지면 사비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정부도 건축비의 20%를 주지 않고 대신 에펠에게 1910년까지 20년 동안 철탑 운영권을 주었다가 그 뒤에 철거하기로 했다.

이렇게 찬반이 대립하는 속에서 건설된 철탑은 시민들의 염려와 달리 6m 높이의 대형 콘크리트를 기단으로 하여 총 7300t의 강철로 300m 높이의 철탑을 2년 6개월 만에 준공했다. 그런데, 시속 180㎞의 강풍에서도 탑의 꼭대기에서 흔들리는 폭은 겨우 12㎝에 불과하여 허물어질 염려가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시민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발명왕 에디슨은 에펠탑을 ‘위대한 아이디어의 현장’이라고 극찬했고, 또 에펠탑은 파리박람회 동안 최고 인기 코스가 되어 200만 명 이상이 에펠탑을 찾았다.

에펠탑에서 본 센강 유람선 선착장
에펠탑에서 본 센강 유람선 선착장
에펠탑에서 본 개선문
에펠탑에서 본 센 강

에펠은 박람회 기간에 공사비를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 건축비 대신 박람회 종료 후 20년간 운영권을 갖게 된 에펠은 이미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때마침 발명된 무선전신의 안테나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면서 철탑 해체논의는 사라졌다. 1916년 에펠탑을 통해서 처음으로 대서양 너머 미국과 무선통신에 성공하고, 1921년에는 라디오방송이 이뤄졌다. 또, 2차 대전 후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300m이던 탑은 18.4m를 더 높여서 현재 320m(높이 312m + TV 안테나 8m)가 되었다. 에펠 사유재산이 된 철탑은 에펠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에펠탑은 1931년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443m)이 준공되기 전까지 인간이 만든 최고 높은 건축물로서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파리의 상징건물이었다.

국가적으로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고, 개인적으로는 에펠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던 에펠탑은 1980년 파리시가 탑의 운영권을 인수했다.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바라보이는 에펠탑은 찾아가기 쉽다. 파리 지하철(Metro) 6호선 비르 아켐역(Bir Hakeim)에서 내리거나 6?9호선 트로카데로역(Trocadero) 혹은 8호선 에콜 밀리테르 역(Ecole Militaire)에서 내리면 된다. 또, 교외선(RER C선) 샹 드 막스투어 에펠 역(Champ de Mars- Tour Eiffel)에서 내리면 더 가깝다. 에펠탑 부근의 샹드마르스 공원 왼편에는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다가 죽은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 그 옆에는 로댕미술관도 있다.

로댕박물관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가로 잘 알려진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미켈란젤로 이후 가장 유명한 조각가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는 건축물의 장식이나 회화의 종속물로 취급받던 조각을 회화와 같은 수준의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사실주의적, 상징주의적 기법으로 인간이 지닌 감정을 잘 표현한 그는 근대 조각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댕박물관은 1728년 당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서 귀족들의 사교의 중심지였으며, 한때는 로마 교황청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1820년부터 1904년까지 수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후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공간이 되었다. 로댕은 1917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사후 로댕 박물관이 되었다. 수목이 잘 다듬어진 박물관 실내외에는 로댕 이외의 많은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센강에서 본 에펠탑
센강 유람선에서 본 에펠탑

우리 가족은 처음 파리 여행을 갔을 때는 에펠탑을 야간에 올라갔지만, 두 번째 여행 때는 일부러 낮에 올라가서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파리의 모습을 보았다. 세 번째는 내 카메라와 스마트폰은 물론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되고 있다. 에펠탑의 입장료는 제2 전망대까지 9유로, 제3 전망대는 15.5유로로서 두 종류이다. 예전에는 입장권을 산 뒤에도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게 늘어졌으나, 이제는 에펠탑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예약 시간에 맞춰서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에펠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57m 지점에 제1 전망대, 115m 지점에 제2 전망대, 그리고 첨탑의 중간쯤인 274m 지점에 제3 전망대 등 3개의 전망대가 있다. 3층까지 총 1652개의 계단이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갈아타는 것이 편리하고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그렇게 300m 전망대에 올라가면 평소에도 강한 바람으로 모자나 옷들이 날아갈 염려가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한다. 전망대에서 파리 시내의 낮과 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가히 환상적이다.

영불백년전쟁에서 패한 칼레 시민상

에펠탑에서는 매일 밤 8시 반쯤 불이 서서히 켜지면서 5분 정도 불빛이 반짝거리다가 9시가 되면 오색찬란한 불빛 쇼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에펠탑은 너무 거대해서 가까이에서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어서 센 강 건너편에 있는 샤요궁(Palais de Chaillot)과 박물관이 있는 곳에 조망하는 포토존을 널찍하게 만들어 두어서 누구든지 에펠탑의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정승열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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