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금강일보] 저고리 풀고
살 섞어
아들 딸 낳고 살았다.

그 사이 몇 번
짐 보따리 쌌다
다시 풀다가,
이 생에서
남은 인연의 끈
나비베 마저 잘라주고.

억새가 야윈 손 흔들어주는
뒷산머리 해질 녘
흰 머리칼 풀어
바다로 가는
저 해혼解婚의 강

그대 삶이 갈피 잡지 못해 머뭇대며 휘청거릴 때 시간이 흐르는 강을 보라. 그대 발길 내딛어 금강으로 달려가라. 강물 속으로 바삐 밀리는 물살의 숨결 가쁘고. 가을에 닿아 애써 시간이 흐른 것을 알려거든 금강 가 숲에 짙은 만산홍엽을 보라. 언제나 금강은 잠깐도 쉬지 않고 강을 흘러 시간의 바다에 닿아 파도로 거듭났다. 강은 그렇게 계절을 사철로 이어 새롭게 철이 들었다. 하여 금강 가 만산홍엽으로 그대 가슴도 물이 들 것이니. 그렇게 금강은 그대 가슴으로 흘러가 그 빛으로 온몸에 스미는 줄 알라.

어느새 한 사내의 삶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기에 이르러. 무르익은 금강도 가을 강에 와 닿았다. 그러니 그 사내 강을 만나 저고리 풀고 살 섞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새벽이면 새로운 강과 산이 맑은 울음으로 태어나 활력을 더하고 점점 더 깊어져간다. 금수강산 빛나는 마을마다 점점 더 정으로 깊어 간다. 하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고 했다. 금강도 이제 작은 물굽이 감싸던 억새가 야윈 손 흔들어주는 뒷산머리 해질 녘이다. 이 생에서 남은 인연의 끈 나비베 마저 잘라주고. 흰 머리칼 풀어 바다로 가는 저 해혼(解婚)의 강이 되었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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