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의 끔찍한 아동 학대

형제복지원 사건이 대두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수용시설로 운영됐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이 1975~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키며 각종 학대를 가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약 3000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는데,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들은 물론 무연고 장애인·고아·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어린아이들까지 이곳에 끌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복지원 측은 이들을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성폭행 등 끔찍한 학대를 가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암매장을 자행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철저히 은폐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이 운영된 12년의 기간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수사해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며, 박 원장은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운동, 1인 시위, 삭발식, 국토대장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내버려 둘 건가, 제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남은 건 트라우마뿐이었다. 하지만 2년 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과거 판결이 잘못됐다며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지난 15일 대법원에서 열린 첫 공개재판에 피해자 수십 명이 법정을 찾았다. 피해자 측 변호인으로 재판에 나온 박준영 변호사는 "위헌인 내무부 훈령을 근거 삼아 특수 감금 혐의를 무죄로 본 판결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충격적인 증언을 대신 읽어내려가자, 법정은 금세 눈물바다로 변했다.

박 변호사는 31년 만에 다시 열린 법정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얘기하지 않고는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없다”며 변론을 시작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고하고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 내 손으로 매장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언니들이 남자 두세명에게 끌려가서 당하고 왔다. 13살 때의 일이니 그때는 뭔지 몰랐는데 미안하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박 변호사의 입을 통해 쏟아졌다. 이어 “(특수감금 무죄 판결의 파기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인간의 존엄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피해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강제수용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과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며 과거 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들은 지금이라도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자신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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