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김형태 박사

논설문이나 평론(시론, 담론)들이 논리정연한 전개로 ‘기승전결’을 통해 읽는 이의 머리(두뇌/이치, 지성/logos)를 공략한다면, 시와 시조는 짧고 정제된 언어로, 때로는 엉뚱한 비유로 읽는 이의 가슴(느낌, 정서, 감동, Pathos)을 파고든다.

소월의 시나 윤동주, 정지용의 시 한 구절이 많은 이의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때로는 웃음을, 또는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래서 양광모 시인은 시를 쓰는 이는 시인이고, 시를 읽는 이는 철학자라고 하지 않았겠나. 지난 30년간 광화문 글판에서 오가는 국민들과 시민들의 가슴에 함께 살아왔던 시들을 모아 그 여운을 좀 더 길게, 넓게 나누고 싶다.

①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그리움)

②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물이다” (메리 올리버/휘파람 부는 사람).

③ “내가 반 웃고/당신이 반 웃고/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다/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마을을 환히 적시리다/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장석남/그리운 시냇가).

④ “푸른 바다의 고래가 없으면/푸른 바다가 아니지/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청년이 아니지//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아직 사랑을 모르지//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별을 바라본다/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밤하늘 별을 바라본다” (정호승/고래를 위하여).

⑤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당신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김용택/ 다시 설레는 봄날에). 사랑은 우리가 숨 쉬고 먹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이제 다음의 시들을 통해 사랑의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①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 꽃 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②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구부러진 길을 가면/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이준관/구부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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