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배송 중단·분류지원인력 투입’ 결정
근무여건 개선한다지만 기사 수익↓불가피

[금강일보 정은한 기자] 과도한 택배 업무로 올해 14명의 택배기사들이 잇달아 사망하며 국민 여론과 국정감사서 질타가 쏟아지자 대형택배사 3社가 ‘택배 과로사 보호대책’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약속한 ‘분류인원 추가 배치’와 ‘심야배송 중단’ 조치가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고 있어 택배업계는 선뜻 반기지 못 하고 있다.

택배사의 자구책은 민간택배 물량의 절반가량을 점유 중인 CJ대한통운에서 먼저 발표됐다. 지난 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는 택배기사 과로사 사건을 공개 사과한 뒤 내달부터 분류인력 4000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연간 500억 원의 추가 인건비를 배정할 방침이며 산재보험도 적용제외 없이 모든 택배기사가 가입하도록 변경하고 택배기사 건강검진 주기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 뒤 회사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한진택배도 비슷한 대책을 내놓았다. 택배 물량 점유율이 13%가량인 것을 감안해 연간 150억 원을 들여 1000여 명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으며, 내달 1일부터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전면 중단하고 미배송 물량은 다음날 배송하기로 했다. 택배 물량 15%가량 점유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택배기사가 하루에 배송할 적정 물량을 산출하도록 물량 조절제를 실시함과 동시에 오는 2022년 충북 진천 지역에 첨단 물류 터미널을 개점하는 등 택배 자동화 설비를 추가 도입함으로써 택배기사들의 작업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보호대책이 마련된 것은 환영하나 약속 이행 과정을 눈여겨보겠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면 택배기사 과로사를 보호할 대책이 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택배노조의 요구안과는 미세하게 엇갈린 부분이 존재해서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이복규 충청지부장은 “분류인원 추가 비용을 노조가 있는 곳은 사측이 전액 부담하겠으나 비조합원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대리점이 인건비 절반을 부담하는 안이 물밑에서 거론 중인 것으로 안다. 과연 대리점이 손해를 감수하겠는가. 아마도 택배기사가 대리점에 내는 수수료(10~20%)가 인상될 거라고 예상한다”며 사측이 분류인원 추가 인건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는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 중단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 지부장은 “분류인원이 배치된다면 배송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심야배송 중단에 따른 매출 감소를 보전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택배기사의 수익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1건당 2500원으로 동결된 배송비를 올리면 저절로 물량이 줄어서 과로사도 방지하고 택배기사 수익도 보전할 수 있겠으나 소비자들의 반발도 있는 만큼 대형쇼핑몰에 1건당 지급하는 백마진(800~900원)을 없애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택배노조는 택배사 주도로 과로사 보호대책을 발표한 것 자체가 ‘잘못 꿰진 단추’라고 여기고 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이 노조가 참여하는 민간공동위원회 구성을 찬성한 만큼 이를 통해 택배노조의 실정과 목소리를 과로사 보호대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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