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시집 ‘노동의 꽃’ 출간

 

좌전에 앉아 환하게 웃는 주름진 얼굴은 황홀하게 타오르는 뻘밭의 결이고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시장 입구부터 사모님 소리를 듣는 자본주의의 기름진 얼굴에 눌려 그늘 속으로 숨는 허기였고, 사랑은 누구라도 그렇게 지켜지는 것이라 믿는 이 서러운 땅에 태어난 꽃, 나는 그것에 말없이 코를 대고 지워진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달 같고 태양 같은 이야기

-‘노동의 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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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꽃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말하는 노동의 꽃은 매우 단순합니다. 가진 자들의 탐욕스러움이 더 선명하게 보였고, 힘겨운 노동과 고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전에 자리한 장애인인식개선오늘의 대표이자 계간 ‘문학마당’ 발행인인 박재홍 시인이 코로나19와 경기침체 삼화로 인한 폐업·실직이 양산되고, 택배 노동자들의 잇단 사망(과로사로 추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2020년 가을, 시집 ‘노동의 꽃’(도서출판 시산맥)을 출간했다.

꽃을 생각하면 집 뒤안의 박태기꽃이 생각난다는 시인, 장애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어깨에 둘러멘 자신의 삶은 늘 팽팽했고 있는 힘을 다해 삶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는 시인, 결코 자신의 삶은 아름답지 않았다는 시인이 민중의 손에 들린 투박한 꽃을 노래했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 ‘하루 일당 받고 집 마당에 들어서는 아버지’, ‘양날의 검(劍)’, ‘욕망의 기술’, ‘공동작업’, ‘날씨가 흐릴수록 몽환적인 노동’, ‘인간이란 재화’, ‘장애가 낯설 때도 있었다’ 등의 작품을 수록한 이번 시집은 소라게처럼 짊어진 거대한 허기의 가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하루가 무엇인지를 담아냈다.

진순애 문학평론가는 “박재홍의 시는 시의 본질적인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현대시와 결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성과 결별해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시의 길을 걷는 그의 시가 오히려 동시대적인 의의를 담보한다. 현대에서 소외된 서사에 천착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2010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한 박재홍 시인은 그동안 시집 ‘낮달의 춤’, ‘사인행’, ‘연가부’, ‘물그림자’, ‘도마시장’, ‘신금강별곡’, ‘모성의 만다라’, ‘꽃길’, ‘자복’ 등을 펴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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