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덕구 송촌서 살던 女문인
남존여비 불합리한 사회상 등 꼬집어
지역 문화예술계 다양한 콘텐츠 선봬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지난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단재(丹齋) 신채호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일었던 지역에서 올해는 포커스를 조선시대 문인 김호연재로 맞추는 모양새다. 대전 대덕구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다양한 기획콘텐츠들을 선보이면서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의 증손부인 김호연재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문인으로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의 작품들에선 자유분방함과 섬세한 감수성, 높은 문학적 소양이 돋보인다. 남존여비 사상이 짙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아녀자로 규범이나 남편의 권위에 기죽지 않고 자아실현에 매진했던 결과다. 소대헌 송요화(小大軒 宋堯和)와 혼인해 대전 대덕구 송촌에서 삶을 보낸 김호연재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남성과 시댁, 불합리한 조선사회를 꼬집으며 시대의 벽을 뛰어 넘고자 했다. 42년의 짧은 생애지만 파란만장했던 김호연재의 삶 속에서 오늘날 시대의 여성상을 반추하게 하는 이유다.

한기범 한남대 사학과 명예교수(한국문중문화연구원장)는 “김호연재는 시대를 앞서간 여성상을 지닌 측면이 있다”며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그는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의 책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군자(君子)로 칭할 만큼 희망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그나 충남 홍성 오두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도, 여성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역 문화계에서 김호연재를 또 하나의 대전 대표 브랜드로 재창조하는 일에 앞장서고 나선 이유다. 그 중에서도 지난 6월 김호연재 여성 휘호대회를 시작으로 관련 기획전을 개최했던 대덕문화원이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대덕문화원은 최근 김호연재의 일생을 담아 모두 5편으로 구성된 영상을 제작, 문화적 콘텐츠 생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 무대에서도 김호연재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극단 새벽은 지난달 대덕문예회관에서 2020 공연장 상주단체 창작 초연작으로 연극 ‘호연 환생뎐’을 무대에 올렸다. 김호연재의 일생을 나열식으로 그리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신사임당·허난설헌을 함께 등장시킨 연극은 그의 기상과 문학성이 결코 뒤처지지 않음을 유쾌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선덕 극단 새벽 대표는 “지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김호연재를 연극화해 여성 역사인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다”며 “앞으로 2~3년 정도 더 공연을 키워서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일에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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