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공단 대전세종충남지부 교수

개구리 세 마리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우유통에 빠졌다. 첫 번째 개구리는 “모든 일은 신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 죽었다. 두 번째 개구리도 “이 통은 너무 깊어서 도저히 나갈 수 없어”라며 우유 속에 빠져 죽었다. 세 번째 개구리는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코를 우유 밖으로 내밀고 뒷다리를 이용해 우유 속을 헤엄치며 다녔다. 그런데 다리에 뭔가 딱딱한 것이 걸리기 시작해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세 번째 개구리가 헤엄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닌 결과 버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매일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이 새롭게 주어지지만, 어떤 하루는 뜻대로 풀리지 않아 연속되는 허들을 뛰어넘듯 지치는 때가 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삶에 찾아들었을 때 어떻게든 되겠지, 지나치게 낙관하는 사람 혹은 모든 게 잘못된 듯 지나치게 비관하는 사람은 그저 모든 것을 상황에 맡겨버리거나 탓할 뿐 주도적으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반면에 상황을 직면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행한다. 생사가 달린 우유 통 안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말 그대로만 보면 참 쉬울 것 같지만 상황에 지배를 받는 우리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단순한 일일까. 그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 어쩌면 가장 어려운 선택을 담담히 행했던 개구리는 상황을 바꾸고 살아남았다.

잠깐 상상해보자.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눈이 잘 떠지질 않는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전날 회식 자리까지 참석해 새벽 3시쯤 끝나 집에 들어온 다음 날이기 때문일 거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먼저 있던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어휴, 술 냄새…” 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로 향하는데 슬슬 고민이 된다. ‘나, 이대로 운전을 해도 괜찮을까?’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전날 먹은 술인데 설마 오늘 아침까지 남아 있겠어, 지난번에도 비슷한 상황에 별 탈 없이 출근했었던 것 같은데 오늘도 별일 없겠지, 단속만 피하면 괜찮을 거야’ 관대하게 생각하고 숙취 운전 길에 오른다.

상황을 비관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요즘 음주운전 처벌도 강화됐다고 하는데 만약 단속되면 어쩌지, 그러게 왜 전날 술은 그렇게 주는 대로 많이 마셨을까, 오늘 오후에 중요한 출장을 나가야 하는데 차를 안 가지고 출근하면 출장을 못 나갈 테니까 차는 꼭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운전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하지?’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직면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숙취 상태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놓고 고민만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운전하지 않는다는 결론 뒤 그 대안을 찾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하고 오후 출장에 대해서는 출근 후 대안을 또다시 찾아 행할 것이다. 숙취 상태가 아닌 상황과 동일하게 모든 것을 다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상황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담담히 선택하는 것이다. 과오가 있다면 인정하고 운전을 안 해서 입게 될 손해가 있다면 담담히 직면하는 것이다. 음주운전을 해서 입을 손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손해일 테니 말이다.

물론 이 가정은 필자의 상상이다. 숙취 운전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갈림길에서 절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었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운전자’라는 이름이 갖는 책임감의 무게이다. 단기적 이득을 계산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나의 운전 인생을 그려본다면 오늘의 손해를, 오늘로만 그치는 선택, 운전하지 않는 쪽을 택할 수 있다. 그저 매일 담담히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이 알파벳 B와 D 사이의 C와 같다’고 했다.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와 같다는 이야기다. 인생에 완벽한 선택이란 없겠지만, 운전 인생에 있어 후회 없을 완전한 선택은 언제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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