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금강일보] 며칠 전까지 거리에 낙엽이 수북하더니 어느새 나뭇가지 앙상한 겨울이다. 안도현 시인은 눈 맞은 나뭇가지에서 꽃피는 봄을 상상한다. 좋아하는 시 한 구절 인용한다.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
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겨울편지 中)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봄을 보는 것도 놀라운데 또 누군가는 얼어붙은 겨울 강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본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문병란 ‘희망가’ 中)”

어느새 12월,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한다.

후회와 아쉬움이 더 크기 마련이지만 희망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출발을 향해 도움닫기를 준비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봄을 기다리듯, 얼어붙은 강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보듯. 그래서 이맘때면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으나 감히 시인의 마음이 되곤 한다. 12월은 그런 달이다.

돌아보면 202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위기와 희망. 잡힐 것 같던 코로나19는 집단감염과 대유행을 반복하며 1년 내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경제에 미친 영향도 심각하다.

마스크는 어느덧 생활필수품이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대면 문화가 우리의 일상을 바꿨다. 여기에 지난 여름 최장 장마와 집중호우 등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워 줬다. 경고등도 없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가 엄습했던 한 해였다.

위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지만 그럴수록 희망도 환하게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천 마스크 제작과 착한 임대료 릴레이 운동으로 이웃의 고통을 함께했다. 수해를 입은 아파트에 물이 빠지자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왔고 성금과 물품이 쇄도했다.

불확실성의 위기를 극복한 힘은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었다. 대전시민은 특히 그랬다.

찬바람 부는 12월 겨울, 대전은 또 다른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세종시 이전 추진이라는 삭풍(朔風)이다.

대전시민과 서구민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중기부 이전 추진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시민단체는 천막농성에 돌입하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에 빠져 있다.

누구를 위한 이전인지 다시 한 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꽝꽝 언 겨울 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것을 (겨울강 中)

대전시민의 외침이 겨울강의 울음처럼 들린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중기부 이전 추진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12월 겨울, 대전에는 삭풍이 아니라 따뜻한 봄을 예고하는 춘풍(春風)이 느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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