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금강일보] 몇 년 전 만난 영화 중에 ‘나이트 크롤러’라는 것이 있다. 나이트 크롤러는 사건이나 사고 현장을 촬영해서 방송국에 넘기고 돈을 받는 일종의 프리랜서 카메라맨이다. 주인공은 돈 되는 거라면 맨홀 뚜껑까지 훔쳐 파는 좀도둑이다.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에서 특종이 될 만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국에 팔아넘기는 나이트 크롤러를 본다. 빈털터리로 지내던 그는 돈 냄새를 맡고 훔친 자전거를 팔아 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구입한다.

그리고 유혈이 난무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을 적나라하게 촬영해 첫 거래에 성공한다. 그가 촬영한 참혹하지만 생생한 영상은 지역 방송국 보도국장의 맘에 들었고 둘은 곧 동업자가 된다. 주인공은 시신을 봐도 역겨움이나 공포 대신 생생하게 촬영해 돈을 벌 생각밖에 없다. 사람의 목숨이 그저 돈벌이 재료가 될 뿐이고 심지어 사고로 쓰러진 사람을 자신이 찍기 좋은 앵글 속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그것은 거대한 조작의 시작에 불과했다. 흉악범의 신상을 파악하고 미행해 경찰로 하여금 그들을 덮치게 한다. 자신의 조수를 일부러 사지로 몰아넣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장면을 촬영한다. 그것을 방송국에 비싼 값에 판다. 그렇게 주인공은 돈을 벌고 자극적 사건 현장을 촬영하는 번듯한 영상 뉴스회사를 차린다. 주인공의 성공 신화를 좇는 새내기 나이트 크롤러들이 그 휘하에 몰려든다.

조두순이라는 사람이 있다.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에서 여덟 살 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한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1심 법원은 조두순의 나이가 많고(1952년생)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기껏 12년형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했으나 기각됐고 대법원에서 12년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술에 취한 것을 심신미약으로 봐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촉발했다.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범죄 등에 한해 특별법으로 음주와 약물에 의한 심신미약은 의무 감경 사유에서 폐지했고 2018년에는 일반 범죄도 심신미약은 의무 감경 사유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했다. 바로 그 조두순이 12년을 복역하고 지난 12월 12일에 감옥에서 나왔다. 조두순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가족들은 조두순이 다시 안산으로 돌아온다고 하자 아예 이사했다.

조두순이 출소하자 첫날부터 그가 거주하는 동네는 아수라장이 됐다. 보수 유튜버들이 대거 몰려와서 소란을 핀 것이다. 조두순 집 앞에서 짜장면 먹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조두순 호송차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조두순 처단을 외치며 밤새 고함을 치고 욕설을 하고, 그런 것들을 고스란히 유튜브로 방송했다. 불과 사흘간 조두순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난동을 부려 입건된 사람은 8명이나 되고 민원으로 접수된 것이 98건에 달한다고 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조두순을 입력하면 영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른바 조두순 비즈니스에 매달린 유튜버들이 넘친다. 그것을 보도하는 방송과 신문 기사들도 그 못지않다. 마치 영화 속 나이트 크롤러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일흔 살을 앞둔 늙은 흉악범의 출소를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유튜버들이나 그것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매체들, 그렇게 생산하고 유통하는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 모두 제2, 제3의 조두순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정작 관심이 멀어 보인다.

“당신들 12년 전에 뭐했어요? 피해자 가족들 법원에서 피켓 들고 할 때 당신들은 뭐했는데? 당신들 후원자 수 늘리고 구독자 수 늘리고 별풍선 구걸하고 이거 아냐?” 조두순이 사는 동네 주민의 질타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설상가상 죽은 지 다섯 달 만에 발견됐다는 발달장애인의 늙은 엄마의 주검 소식을 들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뼈저리게 새겨본다.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기심과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때늦은 탄식과 아픈 추모의 말만을 남기지는 말자. 차라리 소외와 차별에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참한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한국판 나이트 크롤러를 자처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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