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빠는 부모야? 학부모야?” 잠시 어리등절하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공익광고가 생각나 대답했다. “글쎄, 반은 부모이고 반은 학부모가 아닐까?” 어정쩡한 대답에 딸은 실망한 듯이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라고 핀잔을 줬다. 부녀의 대화는 이렇게 간단히 허무하게 끝났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이를 주제로 토론할 여유나 여지가 없으니, 대화가 이어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처지가 힘들어 짜증을 부리고 싶었나 보다라고 스스로 자문해 봤다.지난달부터 한국방송광고공사와 공익광고협의회가 시작한 공익광고인 ‘부모와 학부모’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잔잔한 여성 성우가 읽어가는 멘트를 음미해보면,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학부모는 앞서 가라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지인들과 만날 때면 가끔 이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는지 묻곤 한다. 본 적이 있다는 사람에게는 그 느낌에 대해 물어보고 본 적이 없다면 한 번 보기를 권한다.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양분된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교육의 본질과 부모의 역할을 상기시켜주는 가슴 뭉클한 광고라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나’에서 ‘우리’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웠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강요하지만, 그 삶이 ‘우리’를 파괴하고 결국 ‘나’ 자신도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하루빨리 교육의 본질성 회복에 매진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대체로 어느 누군들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없겠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많았다. 사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주말이면 현장 체험학습 차원에서 많은 곳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애길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다른 아이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에 하나씩 학원 수강을 늘리다보면 대화할 시간도, 체험할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할수록 이 강도는 더해진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부모를 학부모로 몰아가는 상황 속에서 허울만 좋은 공익광고로 시청자들을 호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울분을 토하는 이도 있다.물론 너무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냐고 볼 수 있다.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족과 불편한 교육현실만을 지탄하면서 자신도 시류에 편승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라고 뒤받아 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분명한 것은 모든 부모들은 부모이길 원하지 학부모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부모로서 자녀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고 있다. 부모들의 소박하고 진실된 소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공익광고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사회가 아니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대한민국이 되길 학수고대한다. “딸아! 엄마 아빠는 언제나 부모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너에게 너무 무리일까? 사랑한다. 우리 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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