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 5%, 세상과 거리두기
낯선 시선에 이방인·죄인의식 느끼고
그들만의 세상서 있는 듯 없이 살아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공포

피해의식 딛고 그래도 세상 속으로
무서워도 나와야 작은 변화라도 기대
결국 인식의 문제, 공감대 확산 필요
도전의 씨앗, 희망의 메시지 퍼트려야

대전의 한 장애인활동가가 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지역 식당 정보를 채집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한 곳에 모여 데이터화 돼 장애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재탄생한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대전의 한 장애인활동가가 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지역 식당 정보를 채집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한 곳에 모여 데이터화 돼 장애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재탄생한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세상을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낯선 시선 하나하나에 주눅 들어 금세 이방인이 돼버리고 죄 진 것도 없는데 그냥 죄인이 된다. 자력으론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스스로 자신을 가둬버리기도 한다. 용기를 내 세상을,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보려 애도 써 보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뿐이다. 반복되는 좌절은 그렇게 이들의 삶에 대한 의지마저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다. 장애를 갖고 산다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구, 5%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세상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세상이 이들을 외면하기도 하고 이들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기도 한다. 전자든 후자든 두 상황 모두 ‘비극’이긴 매한가지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든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든 이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살아간다. 그 세상 밖으로 나서는 순간, 모두가 불편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주변에서 장애인과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내버스든, 학교든, 직장이든, 백화점이든, 영화관이든, 식당이든 이들이 스스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한 인간임을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곳은 없다. 이들은 그렇게 있는 듯 없이 산다. 이들만의 세상에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019년 말 기준 약 261만 8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5.1%를 차지한다. 이 중 심한 장애로 등록된 장애인이 약 100만 명에 이른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지체장애인이 122만 3000명(46.7%)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청각(37만 7000명, 14.4%), 시각(25만 3000명, 9.7%), 뇌병변(25만 2000명, 9.6%) 장애 순이다. 지역별는 대전 7만 3000명, 세종 1만 2000명, 충남 13만 4000명, 충북 9만 8000명 등 충청권에서만 31만 7000명이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다.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굴레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은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스로 담을 쌓고 세상과 거리를 둔다.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으니 난 정상(正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말이다. 가장 인지하기 쉬운 예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공포다. 비장애인에겐 너무나 쉬운 건물 입구 계단 하나하나가 이들에겐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이 장벽들 때문에 1시간 이상 (전동)휠체어를 끌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집 밖을 나서려면 동선을 정하고 이용 가능한 화장실을 확인해야만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각종 불법 주정차 역시 또 다른 장벽이다. 길 하나 건너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마치 미로 속을 해매는 그 고통을 비장애인은 상상조차 못 한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인식조차 못 한다.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교통약자 이동권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정부·지자체가 문제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수단들을 내놓곤 있지만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친다. 장애인을 위한 콜택가 있지만 기약 없는 대기시간이 문제고 저상버스 도입도 해마다 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버스정류소 안내 스크린이 휠체어 장애인은 접근하지 못 하는 곳에 설치된 곳도 있고 스크린에 나타나는 버스 정보 역시 이용하려는 버스가 저상버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버스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정류소에서 기다려도 버스에 탑승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버스가 그냥, 혹은 장애인을 보지 못 해 지나치기도 한다. 운 좋게 버스에 탑승하게 되더라도 뒤에 있던 버스에선 ‘바빠 죽겠는데 왜 안 가느냐’고 말하듯 경적을 울리는 등 보챈다. 리프트에 실려 버스에 탑승하는 장애인은 자신 탓이라는 죄책감에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그를 바라보는 탑승자들의 시선 또한 견디기 힘들 정도로 따갑다.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 자체가 우리 사회에선 정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서려 용기를 낸다. 그래야만 조금씩이라도 세상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영진 위즈온협동조합 이사 등 대전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관계자들이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커뮤니티 맵핑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오영진 위즈온협동조합 이사 등 대전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관계자들이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커뮤니티 맵핑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오영진 위즈온협동조합 이사 등 대전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관계자들이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커뮤니티 맵핑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오영진 위즈온협동조합 이사 등 대전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관계자들이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커뮤니티 맵핑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위즈온협동조합 제공

#. 이동식 경사로의 기적
대전에서 IT 기업을 운영하는 오영진(36) 위즈온협동조합 이사는 휠체어 장애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자신이 전동휠체어 없인 한 치도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인 탓에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 해법을 찾는 일에 재미도 붙었기 때문이다.
오 이사가 처음 시도한 일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식당 등 장애인 편의시설 지도를 만드는 일이었다. 장애인단체가 기초조사를 수행하면 그 결과를 데이터화 해 장애인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지속적으로 해당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한 번 찾아왔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만남을 갖게 됐고 여기서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설정하고 문제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한 뒤 공공기관·기업 등의 도움을 받아 솔루션을 만드는 방식인데 가장 성공적인 건 ‘이동식 경사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시발점은 ‘장애인은 맛집엔 평생 갈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출입구에 문턱이 있더라도 경사로만 있으면 장애인도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게 아쉬웠다. 그래서 몇몇 음식점에 50만 원 정도 하는 접이식 경사로를 구매해서 줄 테니 설치를 해 달라고 요청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면도로의 경우 식당과 차도가 거의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경사로가 차도로 침범해 설치되면 불법이라는 법적 한계도 존재했다. 그래서 고안한 게 이동식 경사로다. 평상시엔 가게 홍보용 입간판으로 사용하고 장애인 고객이 오면 그 입간판을 경사로로 활용하는 것이다. 모든 게 공짜이니 업주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프로젝트로 대흥·선화동 일대 15개 식당에 이동식 경사로가 보급됐고 최근 어은동·궁동 일대에도 20곳에 보급됐다.

#. 모두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맵핑
이 기적의 씨앗에서 비롯된 작은 변화는 희망의 메시지로 퍼져나갔다. 사회적 자본의 파이가 커지면서 참여하는 이도 많아졌고 이는 오 이사가 실행해온 커뮤니티 맵핑의 기초체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뮤니티 맵핑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서 추출되는 정보(장애인 편의시설 관련)를 지도에 구현하는 것을 말하는데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직원들의 경우 지금까지 약 2000개의 데이터를 수집해 장애인 편의시설 지도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대흥선화동 일대 장애인 편의시설 데이터가 완료됐다.
이 같은 결실은 또 다른 기회 요인을 만들기도 한다. 이 정보를 보고 장애인들이 식당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업주들에게 ‘장애인도 고객’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거다. 어떤 업주는 장애인 고객 20% 할인 쿠폰을 제안하기도 했다.
오 이사는 2019년 대전방문의 해 선포와 맞물려 대전 지역 문제 해결 플랫폼을 통해 ‘무장애 여행’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대전 관광 콘텐츠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였는데 코로나19로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대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전에서 운행되는 저상버스의 문제점에 눈을 뜨게 됐다. 관광지 내 ‘배리어 프리’ 상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저상버스 배차 정보와 이동 정보 등에 대한 알림 서비스와 버스운전사가 어느 지점에서 장애인을 탑승시켜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등이 담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엔 장애인 탑승 시 뒷버스에 이 사실을 알려 빨리 가라고 ‘빵빵’거리지 않게 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오 이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서로 벽을 만들었다. 이 벽을 허물기 위해선 함께 노력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장애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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