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어느 정도 성장 반열에 오른 기업이라면 세계 시장을 노크하기 마련이다. 인구 5000만 명의 내수시장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이 갖는 상징적 의미 등이 호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 시장의 문턱이다. 바늘구멍 같은 좁디좁은 문을 열어야 한다. 막대한 자본력, 탁월한 기술력을 가져도 해외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2015년 대전 유망중소기업에 이름을 올렸던 ㈜LEDIX는 과감하게 해외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5년 뒤인 지난해 다시 한 번 유망중소기업에 재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으나 해외시장 진출은 결과론적으론 실패했다. 좌절을 맛봤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코로나19란 악재를 R&D의 기회로 삼고 발톱을 갈고 있다. 그들의 두 번째 도전기를 들어봤다.

2015년 이어 2020년 유망중기 재선정
2016년 부푼 꿈 안고 유럽진출 선언
가격 경쟁력 앞에 동남아로 선회
코로나19 영향 해외거래처 줄었지만
대량생산 공정 갖춘 뒤 재도전장

 

#. 유럽 진출 실패에 도전한 印尼

백의의 천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황순화(59) LEDIX 대표는 친정오빠의 권유로 LED 시장에 뛰어들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우직한 R&D를 통해 다양한 성과를 거두며 시장에서 고속성장했다. 그리고 2016년 그들은 해외시장에서 활동하겠단 야심을 드러냈다. 5년이 지난 현재 결론만 이야기하면 해외의 모든 거래처와 협업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최우선 타깃으로 정한 곳은 유럽이었고 유럽의 예비 바이어에게 LEDIX 제품을 자신있게 보여줬다. 황 대표는 LED에서 중요한 방열시스템의 무게를 기존 10㎏에서 600g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던 만큼 제품으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5년 전쯤 해외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뒤 유럽을 다니며 다양한 바이어들을 만났죠. 제품은 자신 있었습니다. 방열시스템을 기존의 10% 이하로 줄이는 기술력이라면 100% 통한다고 생각했죠. 바이어들도 만족했어요. 하지만 가격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유럽은 특정 시간에만 가로등을 켤 만큼 전기료가 비싸다는 게 흠이었죠. 우리나라처럼 주기적으로 가로등 LED를 교체하는 개념이 거의 없더라고요.”

LEDIX의 기술력은 입을 모아 칭찬하면서도 유럽시장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비싸다는 것뿐이었단다. 당시 LED 시장에선 중국 회사들이 가격경쟁력을 통해 점유율을 늘리고 있었다. 중소기업인 LEDIX의 제품은 기술적인 측면에선 경쟁력이 충분했으나 가격을 고려할 땐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하지만 황 대표는 다른 시장을 찾겠단 일념으로 유럽에서 귀국하지 않았다. 뜻이 통한 것일까. 인도네시아의 한 가스 관련 대규모 공장에서 방폭등을 대거 구매하겠단 의사를 피력하자 주저없이 곧장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현지에 도착해 가스공장에 가보니 황 대표와 같은 여러 LED 회사 관계자들로 북적였단다. 대규모 계약인 만큼 노리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가스 공장 측은 “석 달 간 테스트를 해보고 최종 계약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LEDIX를 비롯해 약 30개사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 해외서도 빛난 LEDIX의 기술력

가스 공장 측에서 원한 제품은 폭발이란 위험성에 노출돼도 튼튼히 작동할 수 있는 방폭등이었다. 작동 환경이 극악한 상황에서 30개사의 제품 중 약 10개사 제품은 한 달도 되지 않아 고장났다. 이어 또 다른 10개사 제품도 두 달 째 접어들자 하나둘 먹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석 달째에 접어들자 나머지 제품들 역시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테스트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건 황 대표의 제품뿐이었다.

“당시 가스 공장 측에선 단순히 내구성이 뛰어난 방폭등만 원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월등한 조도도 조건으로 내걸었죠. 방폭등을 비롯해 모든 전구를 보면 불빛은 원 모양으로 퍼지는데 이 때문에 사람이 정말 필요한 조도는 전구에서 발생하는 빛의 30%밖에 안 돼요. 그래서 몇몇 등은 갈아도 어둡게 느껴지죠. 특히 가스 공장은 안전점검을 자주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가 잘 보일 수 있는 방폭등이 필요했습니다. LEDIX는 발생하는 빛의 70%를 아래로 쏘기 때문에 같은 에너지로도 다른 제품보다 밝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뛰어난 내구성과 조도까지 갖춘 황 대표의 안성맞춤 제품에 힘입어 곧바로 가스 공장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국가에서 LEDIX에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단순한 러브콜이 아니라 꼭 하나씩 조건을 걸었다. 가령 멕시코의 한 공장에선 컨버터와 등이 일체화된 방폭등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컨버터는 일종의 안전장치인데 등과 수명이 달라 교체하려면 별도의 비용이 든다. 대개 컨버터의 수명이 등보다 짧기에 등의 수명을 컨버터에 맞춰 줄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황 대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컨버터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택하고 R&D에 들어갔다. 방열장치 무게도 줄인 손이 컨버터 수명 연장하는 기술을 만들지 못할까. 결국 LEDIX는 컨버터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제품을 만들어 내며 해외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 악재를 기회로

인도네시아와 멕시코를 비롯해 황 대표를 찾는 나라들이 늘어나며 그의 여권엔 ‘잉크 마를 날’이 없었다. 대전에 있는 날보다 해외에 체류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코로나19란 사상 최악의 감염병이 그의 하늘길을 막아섰다. 마지막 해외 거래처를 방문한 게 지난해 2월이었다. LEDIX의 주력 산업인 LED 분야는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이 적잖게 줄었다. 하지만 다양한 상품을 병행한 덕분에 전체적인 매출에는 다행히 큰 변동이 없었다고. 이 덕분에 황 대표는 자신 있던 R&D를 더욱 갈고 닦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유럽 시장 진출 당시 발목을 잡았던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대량 생산 공정 확보에 나섰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갖춘다면 정말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다.

“지금은 해외 거래처와의 계약이 모두 갱신되지 않았어요. 공장들도 문을 닫았다네요. 그래서 지금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데 아무래도 감염병 이전보다 LED 매출이 크게 줄어든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야죠. 자신 있는 R&D를 더욱 갈고 닦도록 말입니다. 유럽 진출 당시 약점이었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 중이랍니다. 다시 세계, 특히 유럽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번엔 당당히 얘기하고 실패했지만 이번엔 정말 다를 겁니다.”

다시 한 번 세계로 뻗어나겠단 각오의 눈빛은 이미 한 번 실패를 본 인물의 그것이 아니었다. 황 대표의 계획대로만 이뤄진다면 유럽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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