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이준 회장 누구?...백화점 붕괴에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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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가 연일 화제를 모으면서 이준 회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준 회장은 중국어 실력을 살려 6.25 전쟁 때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며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근무했다.

이준 회장은 1922년 출생해 2003년 사망했다. 삼풍백화점 참사로 7년 6개월을 복역한 뒤, 2003년 4월에 만기출소했으며 지병이 악화돼 같은해 세상을 떠났다.

한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되어 1천여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형 사고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 이후 1년 만에 발생한 붕괴 사고로 충격을 안겼다.

이준 회장은  아파트 용도로 사들인 땅의 용도 변경을 서울시로부터 쉽게 허가받는데, 본격적인 공사가 되자 삼풍백화점은 수시로 도면을 변경했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기둥이 80㎝여야 하지만 60㎝로 줄였고, 기둥 철근은 16개에서 절반인 8개로 줄였다. 5층 식당가는 원래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설계됐지만,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식당가로 변경했다. 때문에 롤러스케이트장일 때보다 1㎡당 360㎏ 이상 무게가 추가됐고, 그 결과 5층에 추가된 무게만 봉고차 1200대에 해당하는 2,415톤이었다. 또 옥상에 있던 137톤에 달하는 냉각탑은 크레인이 아닌 롤러로 이동시켜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다.

용도 변경과 불법 인테리어에 삼풍백화점은 붕괴되기 10일 전부터 식당 천장에 구멍이 나는 등 붕괴 조짐을 보였다. 특히 하루 전에는 식당가 바닥에 폭 1m, 깊이 20㎝ 거대 싱크홀이 발생하고 옥상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옥상 바닥이 내려앉기도 했다.

붕괴 30분 전, 임원들은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고 회의만 진행했으며 균열이 생기는 소음이 들렸지만 단 한 번의 안내 방송도 틀지 않았다. 붕괴 5분 전에서야 비상벨이 울렸고 손님들과 종업원 1,500명은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이 와중에도 경영진은 탁상 회의만 진행했고 결국 단 10초 만에 삼풍백화점 A동이 붕괴됐다. 경영진은 B동 건물에 있어 살아남았다.

붕괴 이후 이준 회장은 "조사하자고 여기 데려오더니 사진 찍으려고 온 거네. 여보쇼.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알고 싶거든. 사장에게 물어보쇼"라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경악을 안겼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다. 재산 피해액은 2,700여 억으로 추정됐으며 이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가 실시되었고, 긴급구조구난체계의 문제점이 노출되어 119중앙구조대가 서울·부산·광주에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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