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길 걷다 뒤늦게 창업 대열 합류
준비없이 시작했지만 직원들과 용기 내
행운처럼 다가온 기회, 노력으로 살려
지속가능 성장 위해 사업 다각화 정진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창업기업이 데스 밸리(Death Valley, 창업 후 3∼5년)를 넘어 도약·성장기로 진입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기 기준이 달라 창업기업 생존율 통계도 제각각이지만 중소벤처기업부 통계로 보면 창업기업 10곳 중 7∼8곳이 데스 밸리를 넘지 못 하고 사라진다.

정부 지원을 받는 창업기업만 보더라도 절반은 5년 후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현실이다. 기술 기반 벤처기업의 경우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거의 대부분 기술만 믿고 창업했다가 거대한 시장 진입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끝내 소멸한다.

벤처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신화’로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코스닥에 입성한 ㈜위드텍 유승교(61) 대표를 만나 기업 성장의 비결을 들어봤다.

#. 원치 않았던 길, 창업
유 대표는 청년 시절 학자를 꿈꿨다. 역동적인 것보단 조용한 실험실에서 연구나 하면서 정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랐다. 유 대표의 인생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경북대 입학 이후 한양대(이학박사), 미국 UCLA·조지아텍(연구활동), 경희대 연구교수·전임강사 등을 거치면서 1999년까지 거의 20년을 학교에만 있었다.

“부친께서 사업을 하셨는데 워낙 힘든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사업하는 건 싫었어요. 맏이인데도 ‘사업을 이어받기보단 학문적인 길을 가고 싶다’ 그렇게 마음먹었죠. 그래서 박사학위도 받고, 미국에서 연구생활도 하고, 귀국해서 강의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인생이라는 게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가진 않더라구요.”

유 대표는 학교에 남길 원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 했다. 학교에서도 일자리 경쟁은 치열했다.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벤처기업이 눈에 들어온 건 이때다. 당시 벤처 붐이 일기도 했던 터다.

#. 운명적으로 다가온 길, 창업
인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유 대표는 대전의 한 벤처기업인과 연을 맺게 됐고 이를 계기로 연구생활의 무대를 벤처기업 부설연구소로 옮기게 됐다. 하고 싶었던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벤처기업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던 길에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던 벤처기업(에이스랩)에 그냥 한 번 들렀는데 그게 창업의 문턱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처음엔 괜찮았죠. 그런데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니 어쩔 수 없이 팀원들과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사업은 죽어도 안 하겠다고 했으니 고향 집에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참 막막했죠.”

유 대표는 막다른 길목에서 2003년 12월 퇴사하자마자 곧바로 위드테크놀로지를 설립했고 이듬해 1월 사명을 현재의 위드텍(withtech)으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유 대표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해서 그런지 두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창업을 하니 용기가 나더라구요. 직원들도 같이 잘 해보자고 하니 두려움보단 희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창업 아이템 역시 외국산 장비가 독점하고 있던 터라 국내에서 시도된 사례가 없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환경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모습도 봤구요.”

#. 운(運)을 만드는 실력, 신뢰와 기술
위드텍이 하는 일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작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학적 오염물질(Airborne Molecular Contaminants, AMCs)을 측정하고 제어하는 장비를 개발·제작·판매하는 거다. 클린룸 내 대기 중에 분자 형태로 존재하는 AMCs는 먼지나 미립자보다도 작아 ULPA(울파) 공기청정기조차 거를 수 없는 평균 0.2~3.0㎚(나노미터) 크기라 초정밀 측정기술이 필요한 데 위드텍은 이를 실현할 기술·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완전 청정 상태에서의 초정밀 제조환경을 요구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암모니아, 산성가스, 휘발성유기화합물물 등 AMCs는 제품 불량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특히 반도체 노드가 100㎚이하로 축소되기 시작한 시점부턴 AMCs로부터 비롯되는 품질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는데 위드텍은 지속적으로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고객사와 동반성장하고 있다.

위드텍은 AMCs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공정 프로세스 모니터링 분야에서도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모든 제조 공정엔 초순수(Ultra pure water)가 사용되고 그래서 오염도 관리가 중요한데 위드텍은 ppt급(1조분의 1) 초극미량 분석을 고감도로 연속·자동 측정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특히 전체 공정 중 일부분만 분석 가능한 경쟁사 제품과 달리 유일하게 전 공정에 활용이 가능한 강점이 있다.

창업 18년차인 위드텍이 창업 이후 큰 위기 없이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삼성전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행운(?) 때문이었다. 위드텍 창업 시점과 삼성의 반도체 공정 업그레이드에 따른 장비 교체 시점이 절묘하게 맞물린 건데 외국산 장비에 의존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싶었던 삼성의 요구와 위드텍의 기술·장비 국산화 의지가 맞아떨어졌다.

삼성 입장에선 큰 모험이었지만 유 대표가 가진 기술력과 성실함을 믿고 투자했다. 유 대표에게 찾아온 그 기회는 운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였다.

“첫 고객사가 삼성입니다. 당시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에이스랩 연구소장 시절) 연이 닿아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다만 저에 대한 믿음은 있었겠지만 실제 요구조건에 맞는 장비를 내놓을 수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클린룸 시설을 만들어놓고 장비를 국산화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죠. 이후 삼성 반도체 라인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우리가 제작한 장비를 라인 공정에 접목시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밤낮없이. 이렇게 하나하나 미션을 수행하면서 신뢰를 쌓았어요. 내 이익이 아니라 고객의 이익을 위해 뛰니까 인정을 받게 되더라구요.”

#.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또 전진
삼성과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위드텍은 고객 업계에서 단숨에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반도체·디스플레이의 경우 국내 업체가 글로벌 최대 업체인 만큼 위드텍은 국내에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수월하게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과 중국에서 자회사를 운영하며 미국 마이크론과 글로벌파운드리, 중국 BOE 등 글로벌 기업과도 거래하고 있다. 반도체산업 호황 속에서 위드텍은 2014년 수출 10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기록했고 전체 매출 역시 꾸준한 성장세 속에서 2019년 500억 원을 돌파했다.

위드텍은 현재 사업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실시간 관측하는 TMS(Tele Monitoring System) 관련 매출을 꾸준히 늘리는 한편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원전 해체 산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분야로 위드텍은 국책사업과 맞물려 이동형 원전 해체 방사성폐기물 핵종분석 설비 개발로 해체 현장에서 실시간 방사성핵종 분석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창업·사업은 용기인 것 같아요. 용기를 내야 시작을 할 수 있고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준비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작 전에 준비를 너무 많이 하면 두려움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무대뽀 정신’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참고 견디면서 고객이 감동할 수 있는 결과를 내야 신뢰가 쌓이고 그래야 업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위드텍이 길을 튼 이후 국내 외국산 장비는 국산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고 이를 본 국내 후발주자이 등장하고 있지만 기술 격차는 여전히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드텍은 이미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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