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정은한 기자] 여름 씨가 편지를 띄웠으니 답신을 띄웁니다. 부디 미안해하지 마세요. 우린 무척이나 여름을 기다렸으니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움츠러드니 만물이 우거지는 생기로움이라도 봤으면 싶었습니다. 이맘때면 한밭수목원, 유림공원, 장태산휴양림, 계룡산 등에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멀리 차를 몰아 대천, 태안 만리포 등지로 해수욕을 갔지요. 도심 워터파크에서 뽀얀 살결을 태워가며 노는 맛은 또 어땠습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 떡볶이, 구운 감자 등을 먹는 것도 일품이었습니다.

벌써 2년째입니다. 제대로 여름을 즐기지 못하고 있지요. 그사이 들끓는 코로나19 고열에 가족을 떠나보낸 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추억이 더 슬프고 애잔합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당신 말처럼 강해지겠습니다. 잘 견뎠다 싶거든 조만간 비를 내려주세요. 여름 당신이 키워낸 ‘하로(夏爐)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동부소방서 구조대원이 시민 구조에 앞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무더위에도 방역복을 착용하고 있다.
동부소방서 구조대원이 시민 구조에 앞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무더위에도 방역복을 착용하고 있다.
동부소방서 구조대원들이 구조버스 안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동부소방서 구조대원들이 구조버스 안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 숨이 턱턱 막혀도 어디든 달려가요
- 시민생명이 최우선…대전동부소방서

또 여름입니다. 아니, 힘겨운 여름입니다. 나 박재열 구조팀장(56)은 여느 때보다 바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동부소방서 1500여 명의 소방관과 말이지요. 사실 여름 씨를 선뜻 반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내가 힘든 것보다 당신으로 인해 힘든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서입니다. 동부소방서는 화재, 구조, 구급팀으로 나눠 시민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화재 19건, 구조 19건, 구급 203건을 출동합니다.

여름이라서 사고가 줄기도 하지만 늘어나는 사고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건 말벌집 제거 민원입니다. 여름이면 꿀벌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덩달아 꿀벌을 사냥하려는 말벌들도 기승을 부리지요. 대체로 대청호 인근 농촌지역과 도심 변두리 지역에서 말법집이 발견됩니다. 땡볕에 보호장구를 쓰고 제거하다 보면 물에 빠진듯 흠뻑 젖습니다. 말법집이 건물 외벽에 있으면 강하용 밧줄을 타고 오르내려야 하지요. 가끔 쏘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시민이 다치잖아요.

보통 겨울에 화재가 많다고 알지만 여름에도 제법 화재가 일어납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계속 가동하다 보니 과부하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지요. 방화복이 얼마나 더운지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열화상카메라, 문 파괴기구 등을 모두 갖추면 25㎏가 넘어요. 때론 여름이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겨울과 달리 이웃집 신고가 이뤄집니다. 시신이 부패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요. 물론 여름 악취로 인한 오신고도 있지만 한 분이라도 더 빨리 발견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가끔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119 신고엔 생활민원도 있는데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거나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아달라는 등 무리한 요청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마음까지 살피기 위해 어쨌든 도와드리지만 그 사이 여름철 수상 사고나 화재가 발생하면 출동이 늦어집니다. 모쪼록 꼭 필요한 구조 민원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 부탁드립니다. 6년 차인 구조3팀 김대영 대원(31)은 최근 아파트에서 추락한 시민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누가 죽으려 든다고 신고해서 급히 출동했으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떨어지셨지요. 소방관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를 비롯해 힐링 프로그램을 강화해주길 바랍니다. 순직 유족연금도 턱없이 낮아 전국의 소방관들이 1~3만 원씩 계급별로 모아 드립니다. 시민안전을 앞장서 지킬 수 있게 부디 도와주세요. 떠나간 소방관들만큼은 기억해주세요

DMC융합연구단 국방RF부품연구실 연구진이 반도체 실험실에서 AESA 레이더 송·수신기용 전력증폭기 집적회로(MMIC) 기판을 살펴보고 있다.
DMC융합연구단 국방RF부품연구실 연구진이 반도체 실험실에서 AESA 레이더 송·수신기용 전력증폭기 집적회로(MMIC) 기판을 살펴보고 있다.

#. 안보 바이러스 혁신무기로 퇴치해요 
- AESA레이더 핵심부품개발…DMC융합연구단 
나 안호균 DMC 융합연구단 국방RF부품연구실장(50)은 국방과학연구원들과 올여름을 뜨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DMC 융합연구단은 기존 ETRI ICT창의연구소 내에 설립돼 3년간 임시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개발이 완료된 한국형전투기(KFX)의 쾌거는 AESA 레이더에서 비롯됐습니다. 국방선진국가에서도 몇 개국만 성공한 최첨단 기술이지요. 그 안에 들어갈 핵심부품인 ‘탐색기용 질화갈륨 전력증폭기 칩’ 국산화를 최근 국방RF부품연구실에서 이뤄냈습니다. 
전력증폭기는 송신 신호를 증폭시켜 원활한 신호처리 및 표적 탐지·추적을 가능케 하는 장비입니다. 존 갈륨비소 소재 대비 10배 이상 높은 출력과 우수한 신호변환 효율을 확보했습니다. 적은 부품으로도 신호를 많이 증폭시킬 수 있어 레이더 경량화는 물론 더욱 정확한 목표물 탐지가 가능합니다. 그동안 미국이나 대만 등 파운드리 업체에서 들여왔지만 드디어 국방기술 자립을 이뤄냈고, 소·부·장 수출에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 3년간 땀 흘려준 연구원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뛰고 있다는 것을 몰라줄 때가 많습니다. 워낙 보완이 철저한 분야라 선뜻 자랑하기도 어렵지만 개발하지 못할 때 듣는 얘기가 더 많거든요. 그래도 매일 같이 방진복에 마스크, 장갑을 착용하고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장비 노후화로 인해 연구속도가 정체되면 그 아쉬움이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힙니다. 과학자는 연구성과를 달성했을 때 환하게 웃게 되니까요. 
부탁드립니다. 노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연구장비 구매가 조속히 이뤄졌으면 합니다. 장비가 없어 타 기관의 연구장비를 빌려 쓰기도 하거든요. 수차례 시험단계를 거치려면 연구장비 안정화가 필수입니다. 
우린 여름휴가를 미룬 채 야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국방자립이라는 사명감에 자발적으로 근무하는 인원이 대다수입니다. 연구는 연속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연구를 마치더라도 그동안 처리 못 했던 행정 업무를 하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연구성과를 달성하더라도 추가 보상은 없는 만큼 단단한 사명감이 아니면 헤쳐나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기쁩니다. 안보 바이러스를 우리 손으로 퇴치할 수 있으니까요. 올여름이 안전한 건 국방RF부품연구실을 비롯한 국방연구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조상들이 흘렸던 눈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올여름을 뜨겁게 보내겠습니다. 

강변산닭 대표 김창선(42) 씨가 뜨거운 화구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강변산닭 대표 김창선(42) 씨가 뜨거운 화구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 말복에 삼계탕 한 그릇 하시죠
-60년 3대째…대전 대흥동 강변산닭

강변산닭을 운영하는 나 김창선(42)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대로 닭·오리 요리를 해왔지요. 저만해도 이제 16년째입니다. 원래는 충남 논산 대둔산에서 장사했으나 더 많은 사람을 대접하고 싶어 대전으로 왔습니다. 처음엔 뿌리공원 앞에서 터를 잡았지요. 다들 맛 좋다며 방문해주신 덕분에 안착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져 규모를 줄여 대흥동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도 가업을 포기하지는 못하겠더군요. 삼계탕은 힘겨운 여름에 힘을 주는 보양식이니까요. 사무직, 공장근로자, 영업직 할 것 없이 다들 삼계탕 한 그릇 드시고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감염 위기로 매출이 줄고 식자재값이 올랐어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지요. 오히려 가격도 저렴하게 1만 원을 받습니다. 내가 힘든데 누군들 지갑이 얇아지지 않았겠습니까. 건강도 생각하고 돈 사정도 생각하는 그런 삼계탕이라서 더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직원이 없습니다. 나와 아내, 가족들이 함께 버티고 있지요. 점심시간이 돌아오면 8개의 화구에서 불길을 내뿜는 조리실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5분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만 시민들의 건강을 챙길 생각에 꾹 참지요. 요즘은 손님 발길도 많이 줄어 한분 한분 매우 소중합니다. 맛집이라며 삼계탕뿐 아니라 닭볶음탕도 많이들 찾아주셔서 여러 메뉴를 동시에 조리할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장사 잘될 때야 너무 덥다고 푸념했지, 요즘은 화구 불길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손님이 없을 때 식은땀이 흐르고 근심이 커집니다.

귀한 손님께 부탁드리자면 음식이 늦어도 조금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더운 여름이라서 속도가 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거 하나만 아쉽습니다. 음식은 천천히 오래 끓여야 맛있으니까요. 그래도 압니다.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삼계탕 먹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는 걸요. 대체로 젊은 분들에겐 온라인 평점을 너무 나쁘게 주지 마시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은 배달해야 매출을 보전할 수 있는데 너무 낮게 주시면 생계가 힘들어지거든요. 전화 주시면 얼마든지 요청에 맞춰드릴 게요.

감사의 인사도 전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들이 3만 5000원 어치를 드셨는데 4만 원을 결제해주셨거든요. “힘내세요” 라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실 울고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남자라서, 가장이라서, 꾹 참아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에게도요. 골목상권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제 곧 말복입니다. 구수하게 끓여낸 삼계탕 한 그릇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

글·사진=정은한·박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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