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硏 근대 학력 엘리트 정보 DB 구축
충청권 학교 9곳 졸업생 명단 확인
김종필·김해인·윤용구 기록 남아
당시 학교 환경도 살펴볼 수 있어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대한제국의 숙원이었던 근대화를 통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은 1910년 일제의 무력에 의한 병탄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결실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병원과 학교가 세워졌고 전차가 건설됐다. 그중에서도 학교에서 근대화 교육을 받은 이들은 해방 후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로 성장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중·고등 교육기관에서 공부한 근대 학력 엘리트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었다.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 연구팀이 2016년부터 3년간 연구비를 지원받아 정리한 DB에는 대한제국기(1897~1910) 고등정도학교 9곳, 일제강점기(1910~1945) 중·고등 교육기관 348곳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13만 7031명에 대한 학력 정보가 고스란히 담겼다.

DB는 학교 일람류와 교지교우회지, 관보 등과 학적부, 학위록, 이력서, 판결문, 신문조서, 졸업앨범, 신문, 잡지 등을 이용해 구축했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근대 중·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 상당수는 민족운동·사회운동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고, 해방 이후에도 국가 수립과 사회 형성을 이끌었다”며 “DB를 활용하면 당시 학교 정보는 물론 동창생, 동문 정보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DB를 살펴보면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충청권에서는 예산농업학교(1910년·전 예산농업전문대), 청주농업학교(1911년·현 청주농고), 충남사범학교(1922년), 공주고등보통학교(1922년·현 공주고), 청주고등보통학교(1924년·현 청주고), 대전직업학교(1927년·현 한밭대), 공주고등여학교(1928년·현 공주여고), 충주농업학교(1930년, 현 국원고), 대전공과학원(1934년) 등 모두 9곳의 학교가 확인되고 있다.

위 학교를 졸업한 이들 중에는 유명인사들도 적잖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三金)시대를 주도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공주고등보통학교), 항일결사를 조직해 식민통치에 항거했던 김해인 애국지사(공주고등보통학교)와 일동제약 창업주 윤용구 전 회장(청주고등보통학교), 광복 후 내무부 차관·국회부의장 등을 지냈으나 일제강점기 고위공무원을 역임한 까닭에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른 한희석(충남사범학교) 등의 자료가 남아있다.

특히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가 본격화된 1940년대 이후 자료에서는 이전 조선 이름으로 가득한 졸업생 명단 등이 모두 일본식으로 바뀌는 역사의 설움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그 당시 충청권 학교의 환경도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DB내 충청권 학교 현황을 보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본인보다 조선인 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일부 공립 형태로 세워진 학교에서는 조선인보다 일본인 재학생이 더 많아 사립과 공립학교가 처했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학교가 제도적으로 학교가 어떻게 변해왔다는 건 아는데 실제로 어느정도 인원이, 누가 다녔는지는 몰랐다”며 “중등 이상의 교육받은 사람들은 지금으로보면 대학원 나온 사람들로 당시로서는 식민지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식이나 학맥 등 훈련을 받은 이들은 해방 후 한국사회 주도층, 엘리트를 형성했고 이 연구는 그 기초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