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서정문학연구위원

[금강일보] 두레의 기원은 삼국사기 권1에 나오는 ‘가배’로부터 시작된다. “왕은 이미 6부를 정한 후에 이를 2패로 나눠 왕녀 2명으로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도록 해 7월부터 날마다 대부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했다.”는 기록은 공동적마(共同績麻)가 ‘길쌈두레’의 기원임을 보여준다.

신라시대 향가 가운데 ‘도솔가’에 나오는 ‘두레놀애’, ‘도리놀애’에서 ‘두리’·‘도리’를 두레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두레작업과 관련해 ‘두르다’는 말에서 왔다고도 한다. 두레는 순수한 사전적인 의미로는 ‘공동작업 조직’을 뜻하며 그밖에 ‘풍물’이나 ‘물 퍼붓는 도구’를 이르기도 한다. 두레는 조직의 규모에 따라서 대두레와 두레, 일감에 따라 농사두레(모심기두레, 김매기두레, 풀베기두레), 길쌈두레(모시두레,·삼두레) 등으로 나눠졌다.

들말 두레소리는 대전 대덕구 목상동과 들말 일원에서 논농사와 관련하여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던 농요다.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넓은 들에 자리 잡은 이 지역은 땅이 기름져 예부터 논농사가 성했고, 농사와 관련된 일노래가 많이 불렸다. 특히 모내기와 논매기는 집약적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마을 단위로 공동 작업을 위한 두레를 조직해야만 했다.

이런 점에서 들말 두레는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던 조선 후기 회덕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논농사 두레와 맥을 같이 한다. 들말 두레소리는 지난 1973년까지 들말(坪村) 일원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4년 무렵 농기계 보급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96년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2002년 12월 31일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됐다.

들말 두레소리의 대표적인 소리로는모찌는 소리인 ‘뭉치세’, 모심는 소리인 ‘상사소리’, 논매는 소리인 ‘긴 상사소리’와 ‘자진상사 소리’가 있고, 이 밖에 ‘맞두레소리’, ‘도리깨질 소리’ 등이 있다. ‘들말 두레소리’는 모찌기부터 김매기까지 불렸던 소리이다.

이에 더해 우기(雨期)가 끝난 음력 9월 무렵에 여름 홍수로 떠내려간 흙을 보충하고 무너진 축대를 쌓은 뒤 토산을 다지던 ‘토산 다지는 소리’와 음력 10월에 지내는 ‘토산제소리’, 지신밟기와 함께 농사지을 물을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샘 고사 소리’는 들말 두레의 연중 연속적 특징이기도 하다.

들말 두레는 농번기가 되면 한 집에 한 사람씩 두레패에 참가하였다. 논일을 나가기 전마을 빈터에 두레꾼들이 모여 농신제를 지낸 후, 농기를 앞세우고 풍장을 치면서 일터로 향한다. 논에 도착해서는 선소리꾼의 선창에 따라 두레꾼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작업을 한다. 이 논농사소리를 통해 일의 고됨을 이겨내고 신명나게 흥을 돋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들말 두레소리는 논농사 중심으로 구성된 대표적인 중부 지역의 두레소리로서 매년 반복되는 수해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땅을 사랑하는 들말 사람들의 자연 극복관이 잘 나타나 있다. 모를 찌고, 심으며 김(아시, 이듬, 만물)을 매면서 부르거나, 너른 들판에 토산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고 ‘우순풍조, 시화연풍’을 빌고 바라며 부르던 ‘토산 다지는 소리’를 비롯해 농사일의 피로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불렀던 농민들의 노동민요다.

이 같음은 지정학적으로 대덕의 들말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등 삼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역으로, 두레소리 역시 이들 세 지역 농요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하겠다.

어느덧 가을이다. 시국이 힘들고 어려워도 계절은 돌고 돈다. 코로나19와 함께 어수선하고도 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다. 추석도 추썩추썩 다가온다. 이런 때일수록 자생적 상부상조와 환난상휼을 담아낸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미풍양속인 두레정신이 간절하다. 대동화합의 상생 의지가 필요하다. 나눔과 배려로 모두가 함께하는 넉넉한 가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대전들말두레소리(이소라, 대전문화12, 대전시, 2003 한국민속박물관 자료 및 기타 문헌, 관련 인터넷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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