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이후 청약철회권 행사 비율 급증
'단기간 돈 빌리는 창구 전락' 우려↑
부담 불가피한 은행들 '울상'

[금강일보 김미진 기자] 시행 직전까지 논란이 많았던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의 또 다른 맹점이 드러났다. 14일 이내라면 상환 수수료없이 계약을 무를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 대출을 받았다가 취소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는 이 같은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응방안이 없어 대출 취소에 따른 부담을 은행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금융감독원의 ‘금소법 시행 이후 신설된 소비자 권리 사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금소법 시행 이후 두달 간 취소된 대출액만 665억 원이다. 금소법 시행 직전 두 달간 철회한 대출액인 245억 원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여기에 올 3월부터 8월까지 19개 은행에서 행사된 청약철회권은 총 7만 8831건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 보면 1조 270억 원에 달한다. 전체 대출 건수 대비 청약철회권 행사 비율은 1.41%로 나타났다. 6개월 간 대출을 받았다가 취소한 사례만 7만 1493건으로 모두 8332억 원이다. 6월까지만 해도 매월 1만여건 수준이었으나 7월 1만 3324건, 8월 1만 6524건으로 빠르게 느는 추세를 보였다.

청약철회권은 소비자가 금융상품을 계약했다가 일정기간 내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다. 청약철회를 할 수 있는 기간은 보험 30일, 대출 14일, 펀드 7일 이내다. 청약철회가 접수되면 은행은 3영업일 이내 이자 등을 제외한 원금을 돌려줘야 한다. 이에 단기간 돈을 빌려 쓰는 창구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손쉽게 계약을 무를 수 있으니까 단기간에 필요한 만큼만 돈을 빌려쓰고 철회하는 경우가 늘었다. 공모주도 넣었다가 환불되면 그냥 청약철회권 행사하면 중도상환수수료 안 내고 빌린 기간동안 발생하는 이자만 갚으면 되니까 이런 악용 사례가 계속되는 것"이라며 "소비자 권리가 강화됐을지는 모르지만 금융사의 부담은 계속 커질 거다. 금감원의 단순 모니터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의 시름도 짙어진다.

지역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모주 청약이나 주택을 매매할 때 급전이 필요하니까 대출을 저렴한 이자로 받았다가 갑자기 와서 철회하겠다는 소비자가 늘었다. 대출 관련 기록도 삭제되고 신용점수에 영향도 미치지 않으니까 이런 경우가 허다해서 난감하다"며 "은행도 은행인데 다른 대출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도 크다. 비대면으로 대출이 손쉬워지니 철회 경우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을 수정하든지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미진 기자 kmj0044@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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