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주도 선박운항 시뮬레이터 분야
국내 기업, 자체 기술 개발로 당당히 도전장
현장 요구, 예산 맞추며 세계적 경쟁력 갖춰가

과거 인류에게 항해는 죽음을 각오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거센 물살과 거친 풍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배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곤 했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는가 하면 바다 곳곳에는 암초가 위치하고 있어 배가 난파되거나 좌초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바람마저 제대로 불지 않는 무풍지대를 항해하는 배의 경우 해류에 의지한 채 표류하곤 하는데 고대 선원들에게 이 지역에 갇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근·현대에 이르러 급격한 선박운항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더 이상 바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항해 역시 위험하지 않다. 우수한 선원들을 양성하고 첨단기술을 이용해 기상을 예측할 경우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항해에 필수적인 인력인 우수한 선원들을 양성하고 해양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이를 시장에 내놓은 기업이 있다.

그동안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했던 선박 운항 시뮬레이터, 해상교통안전진단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기업 ‘세이프텍리서치’다. 세이프텍리서치를 이끄는 공인영(64) 대표이사로부터 대전 굴지의 기업에서 세계적인 선박운항 시뮬레이터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세이프텍리서치의 비전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연구원에서 기업인으로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공 대표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실용화에 관심이 많았다. 응당 자신의 기술이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다면 이보다 더 큰 공돌이(?)의 기쁨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그는 항상 기술을 개발할 때 이를 실용화시키고 창업에 어떻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었단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기술로 창업 시장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보다 앞서 창업을 했던 선배들의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들은 공 대표와 술 한잔을 하면서 늘 “현실은 어렵다”란 푸념이었다. 연구소에서 ‘혁신’이라고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기술’도 현장에서는 외면받기 일쑤였다.

“연구소에게 어렵게 개발했던 기술도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꽤 쓸 만하다고 여겨졌던 기술로 탄생한 제품이 시장은 원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쉽게 창업에 뛰어들기 어려웠던 이유죠.”

그러나 공 대표는 속칭 연구소의 ‘뒷방 늙은이’로 정년을 채우기 싫었다. 후배들에게 눈치를 보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만의 기술로 창업을 해 기업을 키우는 길, 다소 험난하더라도 보다 동적인 모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정부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대한 특별법에 따라 ‘연구소기업’ 설립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산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공 대표가 보유한 기술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자신들의 보유기술을 현물출자(現物出資)하는 기업 설립을 제안했던 것이다. 인도를 향하고 싶었던 콜럼버스가 에스파냐로부터 원조를 받기로 했을 때의 기분일까. 그만큼 그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어려움이 예상됐죠. 공부만 한 연구원들의 소심함이랄까요? 선배들의 선례를 보면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더욱이 제가 진행하고 있던 연구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해야한다는 사실도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왕 기회가 온 거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세이프텍리서치’를 설립했습니다. 꿈을 이뤄낸 거죠.”

◆시련의 시작… 험난한 창업의 길
타고나길 연구원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공 대표에게 창업은 생소하고 험난한 길이었다. 특히 그의 기업인 세이프텍리서치의 주요 사업 분야 중 하나는 선박운항시뮬레이터. 선박운항시뮬레이터는 바다의 파고, 바람, 수심, 조류, 안개 등 다양한 해양환경을 반영한 가상현실을 구축해 이를 실제 선박에서 배를 운항할 수 있도록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국제기구에서 선원을 양성하는 기관에서 반드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기술이다. 그러나 공 대표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무렵 독일, 노르웨이, 러시아, 네덜란드 등 유럽의 기업들이 전세계 시장을 장악중인 상태였다. 국내 시장 역시 이들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독식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고가의 제품 특성상 장비를 한번 구입하면 10년에서 20년 정도 쓰는 데다 이 같은 장비를 구입하는 국가나 기업 역시 적었다. 수요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래서 그의 첫 계약은 창업 첫 해인 2012년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25년 동안 이 분야에 집중한 그였기 때문에 기술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선배와 지인 등으로부터 성실하고 입소문이 자자했던 덕분에 이듬해 목포해양대학교에서 첫 주문이 들어왔다. 공 대표는 이익을 쫓기보다 현장의 요구와 예산에 맞춰가며 고객들인 학교와 학생들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놨다. 만족도는 역시 최고였다. 세이프텍리서치의 다른 주요 사업인 ‘해상교통안전진단’ 역시 시행착오 끝에 무사히 시장에 안착했다. 항해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전문적으로 조사·측정 및 평가를 거쳐 항로를 설계할 수 있는 제품인데 이 역시 공 대표의 작품이어서인지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다.

금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련이 없던 건 아니다. 기술력에 올인한 스타트업이 첫 계약을 따낸 뒤 가장 많이 시달리는 게 바로 수많은 수정사항이다. 고객을 만족시켜야 다음 계약도 따낼 수 있을 것이란 초조함 때문에 첫 계약에서 오히려 돈을 까먹는 스타트업이 상당한데 공 대표 역시 이 같은 일을 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객의 수정사항에 여러 이해관계가 엮인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사업을 하며 오해도 많았고 탈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기관으로부터 해상교통안전진단 사업을 진행했는데 업무 외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자들로 인해 밤낮을 지새우며 고심한 적도 있었죠. 진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우수한 선원들을 양성해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게 하는 것, 안전한 항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검증 작업을 거치는 것 바로 저와 세이프텍리서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버텼죠. 최근엔 인재를 확보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채용 공고를 내도 인재가 오지 않는 데다 키워놓으면 서울로 떠나는 등 지역 기업들이 겪는 애로사항도 우리라고 없을까요.”

◆무인선으로 세계로
그는 시련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제품 개발에 나섰다. 최근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가장 큰 화두인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세이프텍리서치의 라이벌 기업들도 아직 보유하지 못 한 기술이다. 공 대표 역시 아직 성공작이라 할 제품을 내놓진 못 했지만 분명 다른 기업보단 한두발 더 나아간 상태다.

여기에 가상현실(VR)을 적용한 기술은 물론 무인선의 국산화까지 추력 산업으로 삼은 상태다. 그만큼 공 대표는 기술 분야에 있어 자부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특히 그는 무인선의 경우 세이프텍리서치가 보유한 기술이 선박운항 시뮬레이터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상황이어서 조만간 국산화 성공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 자부한다.

“자율자동차를 출시하기 이전에 50㎞ 시뮬레이터를 하며 도로 시험에서는 500만㎞ 이상 주행하는데 무인선 역시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 만큼 연구개발에 특화된 세이프텍리서치의 독보적인 강점은 이를 선도하는데, 밑바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자신합니다.”

기술력, 우직한 연구개발을 무기로 삼고 있는 그여서인지 그는 항상 기술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공 대표도 창업 초반에 고생을 했던 만큼 기술력에 알파를 가져야 한다는 게 공 대표가 항상하는 말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특히 그의 조언은 뼈를 때린다.

“단순 아이디어만 갖고 창업을 하면 금세 한계에 다다릅니다. 덜컥 창업을 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기업 운영, 재무, 투자 등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죠.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험난한 바다에 돛단배를 타고 무작정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창업이라는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충분히 숙달하고 연습한 직후에 뛰어드는 게 좋습니다. 가능하면 출구전략까지 생각하고 말입니다.”

세이프텍리서치는 무인선의 국산화란 국내 기업이 가보지 못 한 망망대해를 홀로 나아가고 있다. 세이프텍리서치의 선장인 공 대표가 손에 쥔 건 기술력 단 하나.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나침반은 없다. 높은 파도가 다가와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그의 기술력은 나침반처럼 우직하게 한 방향을 가리킬 것이어서다. 무인선의 국산화로 다다르는 길을.

글=신성재 기자 ssjreturn1@ggilbo.com
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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