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기계지만 장애인 시선 못맞춰
장애인들 현실과의 단절 느끼며 포기
개정 차별금지법 시행령 28일 시행
“장애인 차별 실질적 근절 계기돼야”

▲ 11일 대전 서구의 한 카페에서 손님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키오스크는 성인들이 서 있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음성지원은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장애인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다. 터치스크린 방식인 키오스크는 화면을 통해 입력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똑똑한 기계지만 장애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장애인의 일상은 오늘도 순탄치 못하다. 장애인들은 오늘도 키오스크가 없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의 일상은 17년째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한 장애인의 삶 개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 높디 높은 현실의 벽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단절시켰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음료를 마실 때조차 말이다. 단절된 대화의 틈은 키오스크라는 기계가 메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매장에서 발 빠르게 키오스크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졌고 이제는 키오스크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또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고 이를 키오스크로 대체한 무인점포까지 함께 급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편의성이 크다고만 여겨졌던 키오스크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만큼은 유달리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까닭이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이내 포기하기 일쑤다. 매장 내에는 점자·선형블록이 없어 키오스크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고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화면을 조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각장애인 A 씨는 “요즘 키오스크가 정말 많아졌는데 기기 주변에 안내원이 배치돼 있지 않아 포기하는 게 일상다반사다. 일부 대형 업체는 안내원을 배치한다고 하지만 점심 때처럼 사람이 몰릴 때는 눈치가 보인다”며 “결국 포기하거나 직원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민간사업장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부터 우선적으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일정 기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변화를 주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라고 막막함을 토로했다.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성인 키 높이에 맞춰져 있어 전동보장구나 휠체를 이용하고 있을 때는 접근이 어렵다. 대전 서구의 한 카페에서 근무하는 점원 B 씨는 “얼마 전 휠체어를 탄 손님이 와서 음료를 주문한 적이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고 있어 먼저 말을 걸어 음료 주문을 받았다”며 “매장에 직원이 있기 때문에 발견하면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 “부당한 차별 이제는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키오스크 및 모바일앱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보장 방안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28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법 개정에 따라 50㎡ 이상 사업장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고 휠체어 발판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면에 점형 블록을 설치하거나 음성안내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만 50㎡ 미만인 경우 키오스크를 연계하는 보조수단이나 상시 지원 인력이 있으면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장애인이 키오스크 등으로 인해 차별을 당했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원위에서 조사를 하고 시정조치를 내리며 접근성을 높여나갈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명진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장애인에게 차별은 이미 보편화됐다.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해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게 아니다. 답답함을 말했을 때 여기에 귀 기울이고 시정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개정 시행령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차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계도기간과 사업장이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해 아직은 힘들 수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인도 차별로 인한 억울함을 말하고 변화를 이끌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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