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정지선 책임연구원

새천년의 설렘과 두려움이 혼재하던 1995년, 세기말적 감성과 함께 인류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내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낸 작품이 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서기 2000년 인류에게 찾아온 대재앙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구축한 2015년이 배경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정체 불명의 존재 ‘사도’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 로봇, 에반게리온과 그 조종사인 소년의 이야기다.

이 만화를 처음 접했던 1997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불과 17년 후 2015년에 이 설정들이 과연 얼마큼 현실이 될까 상상해보곤 했다. 핵전쟁 후 황폐화된 지구를 그린 또다른 작품인 ‘2020 원더키디’를 생각하면, 2000년의 대재앙이 나의 캠퍼스 라이프를 날려버릴 테고 2015년 에반게리온 등장 후 5년만에 죄다 망해서 2020년에는 원더키디처럼 삭막한 세상이 되는 것인가(실제로 에반게리온에서도 죄다 망한다!) 두렵기도 했다.

어느새 2023년도 1/3이 지난 오늘, 에반게리온을 다시 보았다. 지나온 시간대에서 구현 불가능한 내용임이 증명되었지만, 그 방대하고 탄탄한 서사와 과학적 설정은 2055년으로 시간대만 바꿔서 다시 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현재 과학기술에서 집중하고 있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 인간 신경망에 연결된 기기, 생물 복제 등의 주제가 나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의 눈에 새삼 들어온 것들은 다른 것이었다. 획기적 성능의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 로봇과 대조적으로, 작중 인물들이 쓰는 컴퓨터의 모니터는 최근 십여 년 사이 자취를 감춘 브라운관(CRT) 모니터였다. 그들은 여전히 집 현관 열쇠를 주고받았고, 유선 이어폰이 연결된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에바를 가동하는 최첨단 작전 본부와 대조적으로 학교와 아파트의 풍경은 20세기 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작은 발견에서 내가 느낀 것은 묘한 승리감이었다. 인류는 대재앙이나 사도의 습격 없이 무사히 살아남아 살뜰히도 이 세상을 챙겨왔다. 인간의 상상력보다 인간의 생존력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한 뿌듯함이랄까. 에바가 뛰어다니는 퀀텀 점프 수준의 과학기술 발전은 못했지만, 철저하게 인간의 편의를 생각한 기술의 발전들로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얼마 전 실험실 대청소를 하다 찾아낸 플로피 디스크를 보고 학생연구원이 “이게 뭔가요?”라고 질문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1998년생인 그 학생이 학교를 다닐 무렵엔 이미 USB가 상용화되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전화 받는 흉내를 내 보라고 하면, 우리 세대가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수화기 모양을 만드는 것과 달리 손바닥으로 네모난 스마트폰을 흉내내 영상통화하듯 얼굴을 비춘다.

과학기술은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러프한 스케치를 하지만, 구체적인 채색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지금의 과학기술이다. 막연한 두려움도 황당무계한 기대도 상상일 뿐, 인류는 발생 가능한 위험을 예측하고 지성과 감성을 집약해 더 나은 미래를 성실히 그려왔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말은 지금 우리의 과학기술을 두고 하는 칭찬이리라. 지난 세기 무엇을 상상했든 21세기 오늘 우리는 상상 그 이상의 첨단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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