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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노무현 서거 10주기

2019. 05. 23 by 차철호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2002년 3월 17일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치러진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대패를 당한 노무현 후보가 경선장 밖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고, 왼쪽에 당시 취재 중이던 기자의 모습이 담겼다.

 #1. 2002년       

“까치밥 좀 달라고 했는데, 이만하면 선전한 거 아닙니까?”

2002년 3월 17일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열렸던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후보 경선 당일 이인제 후보의 텃밭에서 대패(이인제 67.5%, 노무현 16.5% 득표)를 당한 노무현 후보에게 달려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특유의 위트 섞인 반어적 표현으로 이렇게 답변했다.

패자에게 어렵게 말을 건넨 젊은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오히려 기자의 어깨를 톡톡 다독여준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경선장 밖으로 나서자 눈앞에 노란 물결이 펼쳐졌다.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옷을 입은 지지자들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괜찮아”를 외치며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기자 역시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 회원들과 마주치자 ‘아! 이런 정치인도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 속에 ‘바보 노무현’의 존재를 새삼 발견한 것이다.

[기사 1] 탈권위와 참여, 자율, 분권 ... 그가 꿈꾸던 세상은 현재진행형

 

 #2. 2019년      

10년 전 화창한 토요일, 비보를 들었던 바로 그곳에서 버스는 출발했다. 그가 서거한 지 10주기를 맞아 그의 고향을 찾는 길, 어느새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다지만 10년 전 그날처럼 평온하고 쾌청한 토요일에 같은 장소였다. 이 무슨 고약한 인연이란 말인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

2019년 5월 11일 오전 8시 40분 봉하마을행 버스는 시동을 걸고 한밭대 캠퍼스를 나섰다. 2009년 5월 23일 갑작스럽게 날아든 비보에 멍해지고 먹먹해졌던 그날과 10년 후의 오늘이 한순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사 2] 르포-그의 고향 봉하마을을 가다
사람 사는 세상 꿈꾸던 대지의 아들

 

 #3. 새로운 노무현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2009년 5월 23일 회한(悔恨)이 배인 고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국정을 운영했던 노무현은 한쪽에선 칭송·숭배의 대상으로 추앙받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질시와 조롱, 폄하·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 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그의 유지(遺志)를 이루고자 서거 10주기인 올해도 ‘새로운 노무현’이란 슬로건 아래 시민문화제를 비롯한 각종 기념사업이 노무현재단 주도로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기사3] 아, 노무현
대한민국 이념 갈등의 또 다른 메타포 
한쪽선 칭송·숭배, 다른 한쪽선 조롱·비하

 

 #4.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회   

산맥 없이 혼자 서 있는 봉화산 같은 사람. 그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외로운 존재였지만,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며 마음껏 응원하고 지지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기에 결코 외롭지 않았고, 늘 시민들과 함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그를 지켜준 것도 시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순간에서야 알았습니다....

[기사4] 이제 당신을 보내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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